최근 베트남 이주 여성인 아내를 남편이 무차별 폭행한 사건을 두고 피해자가 계획적으로 폭력을 유도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무분별한 ‘2차 가해’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한국에 정착할 자격을 얻기 위해 이번 사건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의심까지 퍼지며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10일 베트남 현지 언론(VNA)에 따르면 피해자 A씨(30)는 전날(9일) 자신을 찾아온 한국 주재 베트남대사관 관계자에게 “남편과 이혼한 뒤 아이 양육권을 갖고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살고 싶다”면서 “힘든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베트남에 있는 엄마를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달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고 배우자 비자로 입국한 뒤 이달 초 1년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상태다.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면 외국인등록증과 결혼 비자를 받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야 영주권이나 귀화자격 취득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의 협조가 없다면 국적 취득이 어려워 남편의 폭력을 묵인하는 여성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VNA의 보도 내용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A씨가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 일부러 폭력을 유발, 영상으로 증거를 남겼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게시물과 댓글이 인터넷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유튜버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는 것은 맞을 걸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의도적인 촬영”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신을 가해자의 전처라면서 ‘A씨는 내연녀’라고 주장한 글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글 작성자는 자신이 남편을 만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도 “A씨가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하고 이혼을 종용했다”며 “이 모든 일들이 계획적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확인되지 않는 추측과 피해자에게 가해진 폭력과 별개의 잡음으로 인해 정작 가해자가 휘두른 폭력보다 피해자인 A씨를 향한 비난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베트남 여성 폭행 사건의 피해자에게 한국 국적을 주지 말라’는 청원글까지 올라왔을 정도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 이주여성단체에서 가뜩이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피해 여성의 신변이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피해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지금은 일차적이고 말초적인 관심보다 피해 여성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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