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전작권 한국이 행사해도 전선 확대되면 유엔사 영향 막대
“전작권 전환 유명무실해질 것”… 주한미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 겸직
미국이 우리 정부와 상의 없이 유엔군사령부에 독일군 연락장교 파견을 시도한 건 무산됐지만, 향후 미국이 유엔사를 강화해 전시 또는 위기 시에 한반도 전장에서 사실상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후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사를 통해 전시에도 한국이 맡게 될 미래한미연합사령관의 지휘를 받지 않고 전력을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사는 1978년 생긴 한미연합사에 방위 임무를 이양한 후 정전협정 이행을 감시하고 유지하는 역할만을 하고 있으며, 현재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 참모들도 유엔사 참모를 겸직하는 관례가 유지돼 왔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 때부터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엔사를 강화하고 나섰다.
2014년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사 주요 참모보직을 연합사와 분리해 유엔사 회원국 군인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후 유엔사는 지난해 7월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을 부사령관으로 임명해 처음으로 미국 외 6ㆍ25전쟁 참전국 장성에게 부사령관직을 맡겼고, 올해는 스튜어트 메이어 호주 해군 소장을 임명했다. 지난해 8월에는 유엔사 참모장에 미 육군의 마크 질레트 소장을 임명했다. 그간 주한미군 참모장이 겸직하던 유엔사 참모장직에 별도의 장성을 임명한 것도 처음이다. 유엔사 영관급 직위도 최근 연합사와 별도로 채워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부임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유엔사 기능 강화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문제는 미국의 유엔사 강화 기조가 전작권 환수 의미를 반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사시 전선이 확대됐을 때 투입되는 전력제공국의 자산을 관리하는 유엔사는 한국군과 연결고리가 없어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한미연합사령관직을 한국군 대장이 맡고 전작권을 넘겨 받더라도 유사시에는 작전 권한을 놓고 미국과 갈등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한미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는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도 표출됐다. 당시 한미 군 당국은 연합방위지침에 전작권 전환을 명시하면서 “한국 합동참모본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간 상호관계를 발전시킨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에 대해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양국 군 당국이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발전시킨다는 모호한 문구를 넣은 것은 결국 유엔사 역할을 강화하려는 미측 의도를 한국 측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한미연합사령관 모자를 한국에 넘겨주는 대신,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함께 쓰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를 지휘해 사실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쟁 발발시, 한미연합사령관 휘하 전력보다 일본에 위치한 유엔사 후방기지를 거쳐 투입될 전력 자산을 지휘하는 유엔군사령관 예하 전력이 월등하게 앞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전작권 전환 후 미국이 순순히 우리 군 지시에 따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미국이 결국 강화된 유엔사를 통해 역할을 하게 되면 전작권 전환은 허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을 넘어 중국 등을 위협으로 보는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한반도 주변 지역안보 체제를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군사적 움직임을 보일 경우 중국ㆍ러시아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미국이 사실상 주도하는 유엔사라는 다자적 체제를 활용하면 법률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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