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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이 된 방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내 체온은 42도였다

입력
2019.07.11 04:40
수정
2019.07.16 14: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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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국내 편 <2> 우리집은 안전한가

폭염 사망 30% 집에서 발생… 주거환경 취약계층 위협

서울 관악소방서 난곡 119안전센터 부정훈 소방교에게 지난해 여름은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2017년 여름 절정기 하루 2, 3건 정도였던 온열질환자 구급 출동 횟수는 2018년 폭염이 덮쳤을 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폭이 좁은 골목길은 구급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울퉁불퉁한 바닥 때문에 들것으로 환자를 옮기기도 어려웠다. 아픈 환자에게도 좋을 리 없고 구급대원에게도 부담이었지만 할 수 없이 들쳐 업고 구급차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루하루 폭염 환자가 늘어가던 2018년 7월 22일 오후 9시 14분 한 남성이 119에 신고를 했다. “어머니가 의식이 없는 것 같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던 아들이었다. 여느 날처럼 퇴근 후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걸었지만 어머니 김모(당시 71세)씨가 받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가 “계속 잔다”고만 했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날 밤 관악구 난곡동 현장으로 출동한 부 소방교는 김씨의 단층집 문을 열었을 때 “사우나 같았다”고 했다. 한낮에 달궈진 뒤 전혀 식지 않은 열기가 고스란히 집안에 남아 있었다. 선풍기는 꺼져 있었다. 그나마 열어둔 작은 창문으로도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관악산 비탈에 위치한 집이라 밤이면 시원해질 법도 했지만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탓에 통풍이 잘 되지 않았다. 좁은 집안을 가득 채운 가재도구들은 열기를 더 키우는 것 같았다.

쓰러진 김씨의 체온은 섭씨 42도. 다행히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었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반복해서 물은 끝에 겨우 환자의 상태를 유추할 한두 마디를 건졌다. 단서들을 이어 붙여 “된장국에, 김치에 점심을 먹고 나서 (아내가) 계속 잔다”는 한 문장을 겨우 완성했다. 증상이 발생하고 너무 시간이 흘러 환자의 상태가 위험했다.

비탈길을 내달리는 구급차 안에서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이어졌다. 불덩이 같은 몸을 어떻게든 식혀야 했다. 차량 에어컨을 최대치로 틀고, 차가운 생리 식염수를 정맥 주사로 주입하고, 환자 몸 곳곳에 아이스팩을 둘렀다. 그래도 체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병원에 도착해 숨을 거뒀다.

서울 관악소방서가 응급환자 다발 지역으로 분류해 집중 관리를 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의 한 골목. 김창선 PD
서울 관악소방서가 응급환자 다발 지역으로 분류해 집중 관리를 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의 한 골목. 김창선 PD

◇보금자리가 위협이 되는 순간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기상청의 공식 기상 측정망 96곳 중 61곳에서 역대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 치운 2018년 7, 8월 정부와 언론은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실내에 머물라”고 한 곳도 많았다. 사실 더위를 피하는 가장 대표적인 실내 장소는 집이다. 심야에는 말할 것도 없고 노약자의 경우 낮에도 자의든 아니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문제는 ‘어떤 집이냐’다. 에어컨 같은 냉방기구가 없거나 있어도 전기료 부담에 켜지 못하는 집, 불안한 치안 환경 때문에 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는 집, 대중교통 접근이 어려운 집은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김씨의 집은 이 모든 사정에 들어 맞았다. 좋으나 싫으나 내 한 몸 누일 유일한 안식처인 ‘우리 집’이 여름이면 가장 큰 위협이 돼버린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

관악소방서 구급대원들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취약지구’는 김씨 집이 있는 난곡동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5일 관악구 삼성동. 난곡동에서 고개를 하나 넘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8년 전 관악소방서에 처음 부임했다는 부 소방교는 “나도 고향이 서울이지만 여기는 보고 있으면 정말 서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관악산 북서쪽 사면 좁은 골짜기에서 도림천까지 왕복 2차선 도로가 이어졌다. 도로 양 옆으로는 대부분 1, 2층인 건물이 빼곡했다. 넓어야 2~3m, 좁은 곳은 폭이 1m도 안 되는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대부분 기와로 지붕을 올린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집은 10곳에 하나가 될까 말까였다.

지붕이 망가진 집은 대개 두꺼운 비닐이나 담요 같은 것들로 덮여 있었다. 부 소방교는 “비닐이나 담요가 열기를 가두기 때문에 여름이면 집 안의 온도가 더 크게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과거 한파와 물난리를 번갈아 거치며 대문과 창문의 크기를 줄이고, 부서진 지붕을 뭔가 임시방편으로 덮었던 낡은 집 거주자들의 궁핍한 자구책 탓이었다. 폭염이 닥칠 때마다 이런 주거 환경이 거꾸로 생존을 위협하고 있었다. 골목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지난 여름을 어떻게 보냈냐는 물음에 “나는 차라리 겨울이 좋아. 겨울엔 옷 껴 입으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치안 불안도 주민들이 뜨거운 집 안을 쉽사리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요인이었다. 삼성동 주민 장모(72)씨는 “아무나 와서 문을 두드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집 문을 열어두지도 못하고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폭염으로 숨진 김씨 집이 있던 동네도 사정은 비슷했다.

초고위험군 온열질환자 발생 장소/ 강준구 기자/2019-07-10(한국일보)
초고위험군 온열질환자 발생 장소/ 강준구 기자/2019-07-10(한국일보)

◇폭염 피해자 10명 중 3명은 집에서

질병관리본부(질본)가 분석한 지난해 온열질환자 4,526명의 질환 발생 장소 중 1위는 실외(3,324명ㆍ73.4%)였다. 그리고 13.8%(624명)의 환자가 집에서 피해를 입었다. 실외에서 발생한 환자의 수가 집안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여기에는 경미한 증상을 겪었던 환자가 모두 포함됐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죽거나 혹은 위급한 상황까지 내몰린 환자들의 증상 발생 장소 비중은 조금 달랐다. 지난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 48명 중 15명(31.3%)이 집 안에서 쓰러져갔다. 12명(25%)은 실외 논ㆍ밭, 9명(18.8%)은 주거지 주변 실외에서 목숨을 잃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심장이 멎었거나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했던 온열질환 초고위험군 환자 366명의 증상 발생 장소 분포도 이와 비슷하다. 111명(30.3%)이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했고 실외 길가 68명(18.5%), 실외 작업장 47명(12.8%), 실외 주거지 주변 33명(9%) 순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던 셈이다.

초고위험군 온열질환자기초 지자체별 발생환자 수/ 강준구 기자/2019-07-10(한국일보)
초고위험군 온열질환자기초 지자체별 발생환자 수/ 강준구 기자/2019-07-10(한국일보)

한국일보가 많은 주거 취약 지역 가운데 관악구를 유심히 살펴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폭염 때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초고위험군 환자가 가장 많았던 곳은 서울 광진구(9명)였고, 서울 관악구와 경기 남양주시가 8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소방청이 지난해 여름 작성한 ‘폭염 구급대 활동 일지’에 기록된 2,665명의 환자 자료에서도 관악구는 최상위권이었다. 의식 장애, 실신, 심정지 등 중중으로 의심되는 환자 381명의 위치 정보를 다시 분류했을 때 관악구 환자는 9명이었다. 각각 11명을 기록한 전북 군산시와 경남 창원시에 이어 전국 3위였다.

◇폭염 주거대책, 정부도 관심을…

서울 관악소방서가 응급환자 다발 지역으로 분류해 집중 관리를 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 한 마을의 모습. 김창선 PD
서울 관악소방서가 응급환자 다발 지역으로 분류해 집중 관리를 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 한 마을의 모습. 김창선 PD

부 소방교는 만나는 주민들에게 폭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집안이 더 더울 때가 많으니 무작정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 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늘진 길가에 돗자리라도 깔고 앉아 쉬면 좋겠지만 그런 여유 공간도 많지 않다. 다행히 낮 동안 시원하게 지낼 곳이 있다고 해도 열대야가 심한 날 밤이면 열기가 가시지 않은 집에 꼼짝없이 머물러야 한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다른 재난 상황처럼 심각한 폭염 기간이 되면 위험군에 속하는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0일 “폭염 기간에는 주거 환경이 가장 취약한 이들을 안전한 숙박이 가능한 시설로 한시적이나마 대피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적지 않은 경제적, 행정적 비용이 들겠지만 재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역할이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가 주요 폭염 대응책으로 내세우는 지역 ‘무더위 쉼터’의 운영 방식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2018년 전국에 4만5,284개의 무더위 쉼터를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4만2,912개)보다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동네 경로당 등에 무더위 쉼터라는 간판만 걸어두는 식의 대응은 지역사회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주순자 관악구의원은 “정말 마지 못해 경로당 같은 무더위 쉼터를 가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원래 이용하던 어르신들이 낯선 사람을 꺼려서 폭염 대책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열대야로 인한 온열질환 피해도 늘고 있지만 야간에는 운영하지 않는 쉼터도 많다. 폭염이라는 사회적 재난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 차원 대책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한국일보가 분석한 질본의 사망자 48명의 지역 분포를 설명했을 때 부 소방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사망자가 그렇게 적을 리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질본이 밝힌 사망자 48명 가운데 김씨는 빠져 있었다. 무슨 연유였을까. 질본의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체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을 만났다. 지난 여름, 응급실 침대 위에서 생과 사가 오가돈 폭염 환자들을 직접 마주했던 그는 질본의 환자 집계가 갖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다.

3회에서 계속 됩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창선 PD

데이터분석 박서영

[저작권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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