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이 시작됐다. 제작비 100억원대 한국 영화 4편(나랏말싸미, 엑시트, 사자, 봉오동 전투)과 할리우드 기대작 1편(라이온 킹)이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장르도 다양해 취향에 따라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관객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여름 영화 5편을 차례차례 뜯어 보고 별점을 매긴다.
드디어 ‘끝판왕’이 출격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명작 ‘라이온 킹’(1994)이 실사 영화로 다시 태어나 17일부터 관객을 만난다. 전 세계가 기다려 온 순간이다. ‘라이온 킹’과 함께 여름 극장가 대전도 막을 올린다.
아프리카 초원을 지배하는 사자 무파사의 아들 심바가 좌절과 위기를 겪으며 진정한 왕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도널드 글로버, 비욘세, 치웨텔 에스오포, 제임스 얼 존스 등 흑인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영화 ‘아이언맨’(2008)과 ‘아이언맨2’(2010) 등을 만들고 2016년 ‘정글북’으로 디즈니 실사 영화 시리즈를 안착시킨 존 패브로 감독이 ‘라이온 킹’으로 또 한번 도전에 나섰다. 동물 캐릭터와 아프리카 대자연을 컴퓨터그래픽(CG)과 시각효과(VFX) 기술로 빚어냈다. 실사로 보이지만 실사는 아닌 ‘실사 영화’인 셈이다.
원작에서 음악을 책임진 세계적인 음악가 한스 치머와 팝스타 엘턴 존도 참여했다. 1995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동시에 석권한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 등 불멸의 명곡이 편곡돼 실렸다.
◆‘라이온 킹’ 20자평과 별점
20자평 | 별점 | |
양승준 기자 | 엘턴 존만 더 그리운 ‘2019 프라이드랜드(심바의 고향)’. | ★★☆ |
강진구 기자 | 120분 사자 다큐멘터리는 흥미롭기라도 하지. | ★★ |
김표향 기자 | 디즈니판 내셔널지오그래픽, CG 기술이 약이자 독. | ★★★ |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너무 건강해서 심심한 ‘정글’
육아로 번민하는 영웅(‘인크레더블’ 시리즈)에 열광하고, 삶의 쓴맛을 보여 주는 장난감(‘토이스토리’ 시리즈)에 환호한다. 요즘 관객들이 판타지 애니메이션에서 찾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성이다.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유행 변화는 ‘라이온 킹’ 실사 영화가 넘어야 할 높은 장애물이다. 심바의 성장기를 보여 주는 동명 원작 애니메이션의 극적 요소가 약했던 데다 이야기가 단조로워서다. 이 약점을 원작은 음악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실사 영화에선 되레 음악의 힘이 약해졌다. ‘하쿠나 마타타’의 흥은 죽고,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의 뭉클함은 반감됐다. 영화가 끝나면 기억에 남는 음악과 장면이 없다. 뮤지컬 영화로서 실사판 ‘라이온 킹’은 낙제점에 가깝다.
‘라이온 킹’의 유일한 미덕은 ‘건강함’이다. 잔인한 살육 장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심바는 곤충을 즐겨 먹는다. ‘동물의 왕’이 ‘채식주의자’처럼 그려져 새롭다. 정글을 지배하는 사자(심바)의 털은 강, 새, 기린의 배설물 등을 통해 돌고 돈다. ‘라이온 킹’은 자연의 선순환에 집중한다. 세상에 절대 권력은 없다는 메시지다. 실사로 표현된 앙증맞은 심바는 영화의 백미. 아이와 함께 볼 가족영화로는 ‘딱’이다.
양승준 기자
◇철 지난 왕위 싸움, 그 이상은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어린이들의 아침을 깨운 것도 KBS2 ‘디즈니 만화동산’이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디즈니 영화를 보는 관객 중 내용과 결말을 모르는 사람은 극소수다.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깐뿐, 금세 영화가 지루해질 수 있다. ‘알라딘’(2019)은 이 점을 영리하게 해결했다. 자스민 공주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화려한 음악과 볼거리를 보여 줬다.
‘라이온 킹’에 색다른 점은 CG뿐이다. 실제 동물이 연기하는 듯 세세한 표정 묘사는 충분히 즐길거리다. 안타깝지만 그 이상은 없다. 오히려 실사화에 충실한 나머지 주요 인물을 제외하면 캐릭터를 분간하기 어렵다. 원작에서 변주된 캐릭터는 없고, 노래 또한 특별하지 않다. 지루해 하지 말라며 여러 웃음 요소를 집어넣었지만, 폭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주인공 심바의 급격한 심경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라이온 킹’의 내용이 현 시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왕위를 둘러싼 사자 가문의 갈등에 공감할 사람은 몇 없을 듯하다. 원작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반론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관객은 왜 이 새로울 것 없는 영화를 118분 동안 봐야만 하는 것일까. 추억 돌아보기라는 이유만으론 충분치 않다.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만들었다는 기술적 성공 외에는 특별할 게 없다. CG 구경이라면 ‘정글북’으로도 충분했다.
강진구 기자
◇기술의 진보, 서사의 퇴보
광활한 초원을 뛰노는 동물들의 경쾌한 발걸음과 힘찬 날갯짓에 맞춰 아프리카 특유의 신비로운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문명이 닿지 않은 태초의 대자연을 탐험하는 듯 체험을 선사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조물주도 이렇게는 못 만들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광이 118분 내내 펼쳐진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CG와 VFX 등 최첨단 영화 기술이다. 제왕 무파사가 근엄하게 포효하고 아기 심바가 귀엽게 재롱을 떨어도, 그에 대해 정서적 리액션이 즉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스크린 속 모든 것이 CG라는 시각적 경이로움이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희로애락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의 감흥을 발견하고 끄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선구적으로 증명한다.
기술만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이유는 서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존 패브로 감독은 원작 애니메이션을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이식했다. 서사가 익숙하니 관심이 주변부로 향한다. 감정이입도 어렵다. 더 나아가 주제의식이 시대 정신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제왕 권력ㆍ혈통주의ㆍ계급사회 대한 옹호, 차별을 당연시하는 특권주의가 서사의 저변에 깔려 있다. “힘이 닿는 모든 곳이 우리 왕국이다”처럼 미국 패권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대사들도 불편하다.
한스 치머와 엘턴 존의 음악은 명불허전이다. 심바에게 “하쿠나 마타타(근심ㆍ걱정 잊어 버려)”라는 인생 진리를 깨우쳐 준 흑멧돼지 품바와 미어캣 티몬은 최고의 신스틸러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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