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진경제실장 인터뷰]
“삼성 비메모리 반도체 길목 타격… 일본 수출규제, 한국산업 견제 목적”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제공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는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 사업을 겨냥한 정밀타격 수준이었지만, ‘화이트 국가(백색국가 명단)’ 배제가 현실화되면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괴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국내 통상전문가 중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히는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진경제실장은 14일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화이트 국가 배제 조치를 특히 우려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규제 품목을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점에서다. 김 실장은 KIEP에서 장기간 일본 통상 등을 연구하며 일본팀장을 역임한 일본 전문가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산업 견제 목적”

김 실장은 일본이 이번 수출규제에 나선 배경에 한국 경제와 산업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숨어있다고 봤다. “양국간 신뢰 관계가 무너졌다”는 말은 표면적 명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무너진 일본 정보기술(IT) 산업의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경쟁 국가인 한국을 견제하고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이 첫번째 카드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폴리아미드 등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선 것은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인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의 길목을 막기 위한 정밀 타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KIEP 내부에서는 일본의 현재 수준 무역제재를 ‘조치 1’로 규정하고 있다. 조치 1 단계에선 일각에서 우려하는 성장률 저하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걸로 전망한다. 그러나 ‘조치 2’로 규정되는 화이트 국가 배제가 현실화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수출 규제 품목을 일본 경제산업성이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달 24일까지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기 위한 시행령 개정 절차를 밟고 있는데 상황 변화가 없다면 8월 중 시행에 나설 수도 있다.

김 실장은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을 하고 18일까지 답변을 요구했는데 만족할만한 답변을 하지 않으면 화이트 국가 제외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민간이 화학약품이나 2차전지 소재 등을 수입한 뒤에도 얼마든지 군사용으로 쓸 수 있다는 논리를 들어 일본 정부가 수출에 전방위로 개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일간 해결 어려워… 미국ㆍ중국 역할 중요”

김 실장은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 중국 등 3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만나서는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 중재자가 필요하다”며 “미국과 중국의 역할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번 사태의 간접적인 이해당사자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일본에서 소재를 수입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만들면 다시 미국 애플, 중국 화웨이, 오포 등이 최종재를 생산하는 국제적 분업 체계가 형성돼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이 체계가 무너지면 중국과 미국 기업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

다만 중국은 이번 사태를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는 “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며 “중국의 태도, 예상되는 피해 등을 면밀히 살핀 뒤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무역 제재를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 긴급 의제로 상정하고 “정치적 보복 목적”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정부는 WTO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은 WTO 제소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WTO 제소에서 자칫 패소하면 일본에 무역 제재의 명분만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한국 정부의 치밀한 검증이 필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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