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국내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를 보며 힘을 얻어 전 직장에서 겪었던 성폭력 피해를 페이스북에 밝혔던 A(27)씨는 1년여가 지난 최근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가해자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면 자동완성어와 연관검색어로 자신의 실명이 뜬다는 것이다. 그간 이어진 2차 가해에 지쳐 더 이상 가해자와 연관되고 싶지 않았던 A씨는 구글이 요구하는 정식 절차를 밟아 자동완성어와 연관검색어에 자신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인도 아닌 자신의 실명이 노출되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이어진 요청에 2주 만에 온 구글코리아 측의 답장은 간단했다. 자동완성어와 관련검색어의 경우 ‘인터넷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검색어를 알고리즘 방식으로 반영해 선택된 것’이기 때문에 ‘삭제 요청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A씨가 구글코리아 고객센터에 직접 통화를 시도했지만, 부서에서 부서로의 ‘전화 돌림’ 끝에 A씨가 들은 말은 “담당부서가 없어서 지워줄 수 없다”는 게 전부였다. A씨는 “이 일 때문에 한동안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는데, 사람들의 기호에 맞춘 알고리즘이라 건드릴 수 없다는 답변에 무기력함을 느꼈다”며 “모든 사용자들에게 긍정적이고 유용한 검색 결과를 제공하겠다는 구글이 성추행 피해자의 인권엔 무심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구글의 자동완성어나 연관검색어, 검색 결과에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을 경우에도 국내 이용자는 구글코리아의 자체 판단에 맡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구글코리아가 아직까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가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ISO는 2009년 국내 포털 사업자들이 인터넷 공간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한 민간기구로, 네이버와 카카오, SK커뮤니케이션즈 등 12곳이 현재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KISO의 정책규정 등에 따르면 포털은 공공의 이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 않는 한 권리를 침해 당한 피해자가 삭제를 요청할 경우 원칙적으로 연관검색어 등을 삭제해줘야 한다. 판단이 힘들 경우 포털은 KISO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고, 현재까지 회원사들은 KISO 심의 결과를 100% 따르고 있다.
문제는 회원사가 아닌 구글에 대해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과 관련한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KISO가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KISO 관계자는 “자동완성어나 연관검색어와 관련해 개인의 명예훼손이 되는 기준은 정책규정과 심의 사례 등에 매우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라면서 “다만 KISO는 자율기구인 만큼 포털이 이를 따르도록 권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글코리아 측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명예훼손과 관련한 신고를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유튜브 등에 범람하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대책으로 “KISO 회원사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관련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리 대표의 발언이 국감 면피용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구글코리아 측은 “KISO와는 (필요한 경우) 사안 별로 협의하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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