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환경
목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거북이 사진을 보고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손에 들었습니다. 카페 사장님께 과일청병은 버리기 전에 헹구라고 주저하지 않고 잔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이빨대와 분리수거만으로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을 맑게 개이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기업과 정부에게 환경보호의 책임을 따져 물으려 합니다. 환경 문제에 눈 감고 살기에는 아직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갈 날들이 너무 많이 남은 우리, 밀레니얼 세대가 환경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진화하는 ‘에코 라이프’, 유행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
밍크고래= 우리나라는 연간 1인당 132.7kg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고, 택배나 배달음식에 쓰이는 포장재로 따지면 그 배출량이 세계 2위래. 그런데 사실 나는 작년에서야 빨대가 꽂힌 거북이 사진을 보고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실감했어. 이전에는 분리수거 정도로 만족했다면 그 이후로 카페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컵, 플라스틱 빨대 같이 예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신경 쓰게 됐지. 식당에서 포장을 할 때는 일회용 용기를 쓰기 싫어서 집에서 냄비를 들고 가기도 하고, 심지어 생맥주를 포장할 때도 내 컵을 사용하기도 해. 배달음식에서 나오는 쓰레기도 신경 쓰였는데, 최근 배달 앱에서 일회용 젓가락을 받지 않는 옵션이 생겨서 반갑더라.
교통체증= 예전에는 환경보호 방법으로 분리수거를 엄격하게 교육받았다면, 지금은 훨씬 다양한 방법이 등장했어. 최근에 발견한 건 일회용 컵 홀더를 대체하는 면으로 된 컵 홀더야. 예전에는 일회용 컵 홀더를 쓰고 싶지 않아서 컵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불편함을 감수했지만, 면 컵 홀더를 사용한 뒤부터는 그럴 걱정도 없고, 쓰레기를 만든다는 죄책감도 덜었지. 확실히 최근 몇 년 간 여러 가지 환경 친화적 제품이 등장하고,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 생활 방식의 폭도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
병든거북= 나도 비슷한 기사를 봤어. 지난 해 멕시코 해안에서 그물에 걸려 집단으로 폐사한 수 백여 마리의 거북이의 배 속에서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플라스틱이 검출됐대. 게다가 한국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조각이 18만여개 정도였다고 해. 나는 평소에 립스틱이 컵에 묻는 게 싫어서 빨대를 많이 쓰고,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용기를 하루에 두 세 개씩 아무렇지 않게 쓰고 버렸지.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 요새 카페에서 제공하는 종이 빨대도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라고. 주위 친구들도 불과 몇 년 전보다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져.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카페는 가기를 꺼려하는 친구도 있지. 하지만 여전히 가끔 일회용 제품이 주는 편리함의 유혹에 빠질 때가 많아. 그럴 때마다 거북이 기사를 봤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는데,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더라. 아무리 다양한 환경 친화 제품이 등장해도 오래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아 걱정돼.
범죄펭귄= 맞아, 몇 년 전에 일회용 쇼핑백의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에코백이 유행했는데, 이제 ‘에코’의 의미가 퇴색되고 단순한 패션이 되어버린 것 같아. 오히려 에코백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산해서 쓰레기가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에코백의 잦은 구매가 오히려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하는 연구와 기사도 종종 나오잖아. 플라스틱, 면, 종이 등 재질별로 생산될 때 발생하는 탄소의 양을 고려하면, 면으로 된 에코백은 131번 재사용 되어야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대. 전문가들은 면으로 된 에코백을 많이 구매하는 것보다, 한 제품을 몇 년간 오래 사용하는 것이 환경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연예인 팬덤, 문화 행사의 수많은 에코백 굿즈를 보면 곧 버려지고 쓰레기가 된다는 생각에 답답하더라.
아보카도= 베트남에도 에코백이 한창 유행했을 때가 있었어. 한국처럼 환경보호 취지로 시작했지만 결국 유행하는 액세서리가 되어버렸지. 정작 환경보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에코백을 사 모으면서 환경보호를 한다며 자기 과시를 하기도 해. 이런걸 보면 종종 환경보호를 위한 캠페인이나 움직임이 제 의미를 잃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끼게 돼.
◇환경 문제 관심,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해
범죄펭귄= 오래된 습관과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없다면 지금 유행하는 소위 환경 친화적 제품들도 단순 유행으로만 남을 수도 있어. 환경을 보호하는 생활방식이 유행이 아닌 일상으로 정착되기 위해 내가 속한 집단의 분위기부터 바꿔보는 게 어떨까. 나는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 분리수거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데에 신경 쓰자고 직접 얘기해. 주위에 생각보다 분리수거 방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야. 카페에서 일할 때 다른 직원들이 유자청병을 헹구지 않고 그냥 버리길래 세척 후에 버려야 된다고 알려준 적도 많아. 내가 하도 잔소리를 많이 하니까 ‘분리수거 빌런(악당)’ 이라는 별명이 붙었어. 사람들도 처음에는 귀찮아했는데 점점 내 눈치를 보고 분리수거에 신경을 쓰는 것 같더라고. 이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스스로 분리수거를 챙기고 일회용품도 줄이는 것 같아.
밍크고래= 맞아. 분위기가 중요해. 내가 일하는 부서에서는 재활용 쓰레기통이 없어서 분리 배출이 어렵거든. 가끔 보면 다 쓴 종이 컵들이 일반 쓰레기들과 함께 수북이 쌓여 있어. 나는 원래 텀블러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 광경을 보니까 ‘나만 열심히 하는 게 무슨 의미지?’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텀블러를 쓰는구나 싶어서 나도 그 뒤로는 점점 종이컵을 쓰게 되더라고.
교통체증= ‘에코’가 유행으로 끝나는 현상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는 없어. 환경보호에 관심이 없는 개인을 탓하기 전에 개인이 환경보호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해. 앞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거북이’ 기사를 보고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 것처럼, 언론에서 환경 관련 이슈를 지금보다 더 많이 다루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에 지상파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나 기획 기사를 내놓는데, 꼭 환경의 날이 아니더라도 늘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해주는 콘텐츠를 자주 만들고 홍보했으면 좋겠어. 요즘은 넷플릭스 등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환경 관련 콘텐츠를 종종 볼 수 있잖아. 가장 최근에 <vox explained> 시리즈 중 <물이 부족하다> 를 봤는데, 물 부족 현상을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 깊이 있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어. 국내에서도 이제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관련 콘텐츠가 자주 보이기를 바라.
◇기업ㆍ정부 책임 하에 사회 구조적 변화가 중요
교통체증= 내가 군복무 했던 미군 부대에서는 쓰레기를 분리수거도 하지 않고 버렸어. 부대에는 거의 1만 명이 살아서 집하장에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이틀 만에 꽉 찼지. 그걸 보면서 개인이 환경보호를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변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 미군 부대를 예시로 들었지만, 결국 기업과 정부 차원의 변화가 필요해. 요즘엔 기업도 환경보호 취지의 이벤트를 많이 열잖아. 어떤 커피 회사에서는 다 쓴 캡슐을 새로운 커피 캡슐로 교환해 주기도 해. 이게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이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아.
병든거북= 맞아. 개인을 탓 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사실 환경보호의 책무를 요구받아야 하는 건 대기업들이야. 올해 4월 일부 대기업의 화학분야 계열사들이 대기 오염 물질 배출 수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잖아. 심지어 이런 수치 조작은 당연한 관행처럼 여겨져 왔대. 일반 가정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로 환경에 영향을 주는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없다면 아무리 보통 사람들이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기업의 유해물질 배출 및 관리에 대한 규제가 지금보다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해.
범죄펭귄= 기업도 책임이 크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소비 방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필요 이상의 소비가 과한 쓰레기를 만들고, 우리는 그러한 소비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요즘 내 친구들 몇 명은 매년 철마다 의류를 과잉 생산하는 ‘패스트 패션’을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나도 요새 ‘1년 동안 옷 안사기’에 도전 중이야.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서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셔. 옷도 거의 사지 않고,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으시지. 이 땅에서 살다 갈 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고 싶다는 게 그분의 철학이야.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본인의 소비 행태가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해
밍크고래= 난 개인의 소비 방식 변화가 환경에 큰 도움이 될지에 회의적이야. 어차피 내가 옷을 사지 않아도 새로운 옷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다수에게 판매돼. 소비보다는 생산 구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해. 소비자가 옷을 덜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전에 의류 회사가 먼저 과도한 의류 생산을 자제해야지. 흔히 수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많아. 나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신제품 마케팅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흔하지. 최근에 여름 티셔츠를 사려고 옷 가게를 갔는데 요즘 유행이라는 얘기에 ‘어 나도 사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어 함께 사왔어. 막상 집에 와서 옷장을 열어보니 그런 식으로 산 옷이 한두 벌이 아니라는 걸 알고 후회했지. 누구에게나 있는 흔한 일이지만 필요 이상의 소비가 늘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라고 생각해.
범죄펭귄= 법이 제정되고, 사회가 바뀌려면 정치적 움직임이 필요해. 환경 이슈를 중요시하는 정치 세력이 커졌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환경 이슈를 주요 어젠다로 삼는 소수 정당의 의견이 국회에서 관철되는 게 필요해. 만약 환경 이슈를 다루는 정당의 의석이 많아지면 그 의견이 반영돼서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다당제를 시행하는 독일은 연립정부에서 녹색당이 유효 정당이라 정책을 추진할 때 환경보호를 항상 염두에 둔대. 그런 의미에서 소수 정당의 원내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의 선거제 개편도 환경 이슈의 중요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해. 우리나라는 아직 환경 보호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이슈가 아니지만, 머지않아 원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되기를 바라
◇SF 속 디스토피아는 공상 아닌 ‘오래된 미래’
밍크고래=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 영화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황폐화된 미래 지구의 모습이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느껴지지 않더라.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는 더 이상 야생 동물이 살지 않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없는 미래의 지구가 등장해. 어릴 때에는 그저 신기한 공상과학(SF) 이야기로 느껴졌는데, 최근에 그 영화를 보고 몇 십 년 뒤 내가 살 곳처럼 느껴져서 오싹하더라고. 2049년이 아니라 더 근접한 미래일지도 몰라.
병든거북= 요즘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을 보면 현실과 SF영화를 구분하기 어려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두통과 기침으로 몸이 먼저 반응해. 가끔 답답한 서울을 벗어나 공기가 좋은 숲이나 시골로 놀러 갈 때면 자연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처럼 보여. 괜히 삶을 긍정하게 되고, 지쳐 있는 정신이 힐링돼.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 앞이 보이지 않는 하늘 밑에서 정신적으로 우울해지기도 해. 내가 약국에서 일했을 때 가끔 호주나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이 기침을 하면서 마스크를 사려고 오더라. 자기들 나라에서는 안 그랬는데, 서울에 온 뒤부터 알레르기나 기관지 질환에 시달리고 있대. 그 말을 들은 약사님이 “해결 방법은 본인 나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다”라고 해서 웃기면서도 슬펐어.
범죄펭귄= 영화 ‘인터스텔라’의 줄거리도 환경이 파괴된 지구에서 이주를 하는 사람들의 삶이야. 난 이 영화가 우주와 블랙홀의 신비한 장면을 보여주는데도 환경 오염으로 황폐화된 지구의 모습이 떠올라서 집중이 잘 안되더라. 영화 속 오염된 공기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혼탁한 하늘 밑에서 콜록거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서울의 풍경이 떠올랐어. 영화가 개봉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탁해진 하늘을 보면 ‘인터스텔라’가 그려낸 디스토피아가 생각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주제 의식은 멋진 우주의 신비가 아닌 심각해지는 환경 오염에 대한 경고라는 생각이 들어.
밍크고래= 나도 그 영화 기억 나. 영화는 결국 사람들이 파괴된 지구를 버리고 다른 우주로 전부 이주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 영화는 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표현하지만, 결국 새로 찾은 보금자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똑같이 오염되겠지.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변하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그건 결코 해피엔딩이 아냐.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살아 왔어. 어쩌면 영화에 질리도록 등장하는 황폐한 지구는 우리의 뻔한 미래일 수도 있어. 지금 변하지 않으면 결국 예측 가능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셈이야.
정리= 정예진 인턴기자
참여= 김의정, 주소현, 최한솔, 홍윤기, 화이투 인턴기자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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