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도 안 되는 방한 일정에 경기까지 뛰는 무리한 스케줄
‘호날두 45분 이상 출전’ 약속 불구 ‘부상땐 위약금보다 손해’ 판단한 듯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명문클럽 유벤투스 방한경기는 애초부터 호날두의 출전 여부에 따라 성패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도박판이나 다름없었다. 수익만 고려한 채 무리한 일정을 밀어붙인 주최측과 호날두의 결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유벤투스, 계약만 믿고 K리그 대표팀까지 결성한 한국프로축구연맹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노쇼 참사’는 이들 3대 주체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지난 21일 싱가포르에서 토트넘전(63분 출전), 24일 중국 난징서 인터밀란전(풀타임)을 치른 호날두에게 이날 경기 45분 이상 출전 요구는 다소 무리였단 지적도 나온다. 이적료 1,000억원이 훌쩍 넘는 천문학적인 몸값을 지닌 호날두로서도 타이틀 없는 일회성 친선경기에 제대로 몸도 풀지 못한 채 나섰다 부상 당했을 때의 대가가 위약금보다 더 크단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12시간도 안 되는 방한 일정으로 수십억원의 수익을 거둬가려던 유벤투스, 이를 활용해 티켓과 광고ㆍ중계권 수익을 노렸던 더 페스타, K리그 올스타전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 했던 연맹의 안일한 기대는 호날두 결장이란 변수에 와르르 무너졌다. 주최사인 더 페스타 로빈 장 대표는 28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5월 체결한 유벤투스와 더 페스타 간의 방한경기 관련 계약엔 ‘호날두 45분 이상 출전’ 조항이 명시돼 있다”며 “유벤투스 구단 측이 전화로 잘못을 시인하고 29일쯤 (사과나 보상에 대한)구체적인 메시지를 주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입장권 구매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에 대해선 책임을 프로연맹에 떠넘기는 모습이다. 장 대표는 “호날두의 45분 출전 계약 내용은 우리(더 페스타)가 밝힌 적이 없기에, 우리에게 배상 책임은 없는 걸로 안다”면서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 계약 조항을 외부에 알린 건 우리가 아닌 프로연맹”이라고 했다. 그는 “해당 조항이 외부로 알려진 건 나중에 알았고, 나 또한 깜짝 놀랐다”며 “중계권사에서 뉴스를 통해 이 사실을 보도한 것 또한 최근에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프로연맹 측은 어불성설이란 반응이다. 연맹 관계자는 “우리가 더 페스타와 계약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호날두 출전조건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라며 “더 페스타 역시 호날두 출전조항을 가지고 홍보했다”고 했다. 실제 연맹은 유벤투스와 더 페스타간의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을 확인한 뒤인 6월말에야 친선전에 합의 후 계약했다.
1차적으로 무리한 방한 계획을 밀어붙인 유벤투스와 큰 부상이 없음에도 출전을 완강히 거부한 호날두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무박2일이라는 변수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채 유벤투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파행을 부른 더 페스타는 물론, 대형 축구이벤트 주최 경력이 전무한 더 페스타의 제안을 받아들인 연맹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실정이다.
연맹은 향후 더 페스타에 대전료 외에 위약금을 추가로 청구할 방침이고, 더 페스타 쪽도 유벤투스에 대전료를 지불할 때 위약금을 제외하고 지불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을 믿고 값비싼 티켓을 구매한 축구팬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팬들을 기만한 데다 불법 스포츠도박사이트 광고를 노출한 더 페스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연맹은 “많은 축구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K리그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로빈 장 대표는 “유벤투스 측에 문제점들을 강력하게 항의하고, 향후 관련된 모든 사실을 조속히 알려드리겠다”고 해명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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