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소품을 눈 여겨 본 적 있나요? ‘공연 무대에서 쓰이는 작은 도구’를 뜻하지만, 그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소품으로 공연을 읽어 보는 이야기가 격주 목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 옵니다. 한국일보>
17세기 중엽 프랑스 파리에서는 검술이 힘을 상징했고, 시를 쓰는 건 지혜로움을 의미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이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귀족들 앞에서도, 100명의 적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함을 가진 남자였다. 그러나 시라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거대하고 괴상한 모양의 코였다. 남몰래 짝사랑해 온 여인 록산 앞에서 시라노는 다른 것도 아닌 코 때문에, 한 없이 작아졌다. 그리고 시라노는 엉뚱한 방식으로 록산에게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얻는다. 마을에서 빼어난 외모로 이름을 날리던 청년 크리스티앙이 자신의 서툰 말솜씨를 대신해 록산에게 마음을 표현할 연애편지를 시라노에게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록산을 향한 사랑을 써내려 간다.
2017년 국내에서 초연한 뒤 2년 만에 재공연되는 뮤지컬 ‘시라노’의 줄거리다.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에서 시라노의 코는 어떤 소품보다도 눈에 띈다. 평균 길이가 6㎝인 이 거대한 코를 개발하는 데만 두 달 반이 걸렸다. 시라노 역을 맡은 배우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초연 때부터 분장을 총괄한 김성혜 분장감독이 이번에도 함께 한다. 김 분장감독은 ‘시라노’ 대본을 처음 읽고, ‘남다른 코지만 절대로 못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또 무대에 오르는 3시간 동안 배우들이 노래와 연기를 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말랑말랑한 폼 재질을 바탕으로 특수 재료(제작진은 극비라고 밝혔다)를 혼합해 만든 분장용 코의 무게는 10g 이내다. 처음엔 피부와 질감이 비슷한 실리콘으로 만들었는데 100g이 넘는 무게로 배우들이 불편함을 호소해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 같은 재질을 만들어냈다. 이번 공연에서 시라노를 맡은 배우 조형균은 “전체 리허설 때 코를 붙여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볍고 이물감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성혜 분장감독은 “코가 너무 물렁하면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긴 코가 출렁거리고, 반대로 코가 너무 단단하면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힘들 수 있어 배우들 마다 이목구비와 근육의 움직임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코 모형은 배우들 마다 맞춤 제작한다. 제작기간은 2주 남짓. 석고를 이용해 배우 얼굴의 본을 뜬 뒤 이 위에 코를 조형한다. 그리고 조소 틀에 재료를 부어 코 모형을 완성한다. 반나절 이상의 건조 시간을 거친 뒤 배우 피부 톤에 맞춰 채색한다. 초연에 이어 재공연에도 무대에 오르는 배우 류정한의 경우 초연 때 만들어 둔 조소 틀을 그대로 사용한다. 배우들의 피부 체질도 다르기 때문에, 코를 부착할 때 사용하는 글루도 각자 다른 종류를 사용한다고 한다.
공연 시작 1시간 30분 전, 배우들의 분장은 시라노 코를 붙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혹시라도 무대에서 코가 떨어지는 불상사가 벌어지더라도 바로 붙여야 하기 때문에 코를 부착하는 시간은 5~10분 정도로 단축했다. 코 모형은 2,3회 까지만 사용 가능하다. 총 80회 공연되는 ‘시라노’에서는 분장용 코만 40여개가 쓰인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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