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규제와 불매운동 등으로 심화하고 있는 한일 갈등에 베트남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자국 경제성장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 한국 배제가 현실화할 경우 베트남도 받을 타격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와 관계가 깊은 한 소식통은 31일 “베트남이 차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의장국이고, 한일 양국과 모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만큼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운신이 쉽지 않다”라며 “그냥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일본의 대 베트남 투자규모는 지난 6월말 누적 기준 각각 645억달러(약 76조원), 579억달러(약 68조원)로 1, 2위를 달리고 있다. 이 소식통은 “삼성전자가 베트남 수출 4분의 1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타격은 곧 베트남 경제에 직격탄이 된다”며 원만한 사태 마무리를 바라는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베트남법인 관계자는 “당장은 별다른 피해가 없지만 휴대폰, 백색가전 등 베트남 내 생산 제품들이 대부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이용하고 있는 만큼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베트남 사업장도 영향권에 드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삼성전자의 지난해 수출액은 600억달러(약 71조원)로, 이는 베트남 전체 수출(2,435억달러)의 24.6%에 해당한다.
한일 갈등 예의주시 분위기는 현지 언론 보도에서도 확연하다. 지난 11일 ‘아이폰, 한일 갈등으로 중국산 디스플레이 사용할지도’ 제하의 관련 기사가 처음으로 보도된 뒤 31일 오전까지 현지 언론들은 90여건의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대부분 사실 전달 중심이긴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 기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이례적인 수준이다.
베트남 전문가들도 한일 무역 갈등이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베트남 중앙경제관리연구원의 응우옌 안 즈엉 연구부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 장기화로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스마트폰, 컴퓨터 등 완제품과 부품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베트남의 수출입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라며 ”미중 무역전쟁보다 한일 갈등이 베트남에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