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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극복한 산업 의병들] “일본을 넘다” 기술 독립선언

입력
2019.08.05 04:40
수정
2019.08.05 07:3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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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CT 케이블 세계 첫 개발한 진영글로벌 

 미래車ㆍ5G 필수 초경량 소재… 日 견제 피하려 신기술 개발 주력 

 “日기술의존 자존심 상해 개발… 정부지원 없이 R&D, 대출 애로” 

[저작권 한국일보]김경도 진영글로벌 대표가 4일 회사 실험실에서 기존 제품과 구리량을 대폭 감소해 새로 개발한 필름 버스바(오른쪽) 제품을 들어 모이며 설명하고 있다.오대근기자 /2019-08-0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김경도 진영글로벌 대표가 4일 회사 실험실에서 기존 제품과 구리량을 대폭 감소해 새로 개발한 필름 버스바(오른쪽) 제품을 들어 모이며 설명하고 있다.오대근기자 /2019-08-04(한국일보)

‘폴리사이클로 헥실렌 디메틸렌 테레프탈레이트(PCT)’는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케이블에 사용되는 슈퍼엔지니어링플라스틱이다. 기존 플라스틱 소재와 비교해 습기와 열에 강하고, 화학물질에 부식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 무게도 훨씬 가벼워 고부가가치 첨단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연비를 높이기 위해 부품의 경량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동차의 케이블을 만드는데 안성맞춤인 소재다. 다만 화학물질에 강한 특성은 PCT를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접착제 등을 사용해 쉽게 붙이거나 변형하는 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PCT를 활용한 케이블 개발에 선뜻 나서질 못했고, 기존 첨단 소재에 대한 독점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었던 일본 기업들은 굳이 새로운 소재인 PCT 개발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PCT 필름을 활용한 케이블 양산에 성공한 국내 기업이 있다. 2005년 설립된 자동차 부품업체 진영글로벌이 주인공이다. PCT 필름 케이블은 기존 제품 대비 무게는 절반도 채 안되지만, 동일한 성능을 내면서도 내구성이 5배 가량 좋다.

4일 경기 수원시 광교의 연구실에서 만난 김경도 진영글로벌 공동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첨단 소재에 대한 개발 의지도 크지 않고, 수입해서 쓰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일본 의존율이 99%에 달하게 됐다”면서 “차량용 케이블 소재도 일본 부품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훨씬 우수한 소재를 적용하기 위해 PCT 케이블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영글로벌이 PCT 케이블 개발에 나선 것은 일본 기업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첨단 소재 분야의 불공정성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국내 자동차에 적용되는 첨단 소재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독점 공급받고 있어서, 해당 기업의 공급량에 따라서 국내 완성품의 생산량이 결정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기술 개발을 하지 못한 국내 소재업체들은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페트(PET), 폴리에틸렌나프탈레이트(PEN) 등을 수입해서 높은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데 주력해야 했다. 때문에 관련 산업이 커지더라도 실제 돈을 버는 곳은 일본 소재 기업이었다. 국내 업체들이 신소재를 활용해 신기술을 개발하려 하면, 일본 기업들은 부품 공급 가격을 낮추고 소재 물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견제했다. 이는 결국 대일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진영글로벌은 이런 견제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이 이미 기술을 소유한 첨단 소재를 개발하는 게 아닌, 아예 일본 조차 갖지 못한 신제품인 PCT 케이블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김 대표는 “PCT 케이블의 경우 국내에서 원소재 개발, 필름 생산, 접착 기술까지 국산화가 완료됐다”며 “이젠 역으로 일본 기업이 국내로부터 수입을 요청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첨단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려고만 하는 것에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는 게 김 대표가 PCT 케이블 개발에 전념한 이유였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약 2년 동안 연구개발 비용으로 40억원 정도 투자했지만, 정부 정책과제 지원금은 대부분 신생벤처기업이나 바이오, 게임산업 등에 집중되다보니 한푼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서 “기존 사내 유보금과 회삿돈으로만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자금이 모자라 은행에 대출 신청을 했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대표이사의 연봉까지 삭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결과는 눈부시다. 진영글로벌의 PCT 케이블은 현재 기아자동차의 전기차 ‘니로EV’에 공급하고 있고, 다른 차종에도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또 독일, 일본, 미국 등 해외 자동차 기업들도 PCT 필름 케이블 공급을 요청하고 있다. 미래 자동차는 전동화, 자율주행, 커넥티드 등의 기능을 탑재하기 때문에 7㎞ 이상의 전선이 사용되고, 그 무게만 수십 ㎏에 달한다. 때문에 차량 경량화를 위해서는 PCT 케이블 같은 새로운 소재가 필요하다. 특히 미국 포드는 불량률 문제로 자동차용 전선을 기존 PET 필름에서 PCT 필름으로 변경하면서 진영글로벌과 독점 계약을 했다.

진영글로벌은 내년엔 5G 안테나용 소재인 ‘리퀴드 크리스탈 폴리머(LCP)’를 PCT로 대체하는 기술을 양산화할 예정이다. 현재 LCP는 일본 도레이가 독점 생산하고 있고, 이 마저도 애플이 선주문을 마친 상황이다. 다른 기업들은 대체제를 찾고 있다. 진영글로벌은 PCT 주파수 측정을 위한 공인성적서를 준비하고 있다. PCT는 LCP 대비 원가가 크게 저렴하면서도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어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진영글로벌 측은 보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김경도 진영글로벌 대표가 4일 회사 실험실에서 기존의 와이어 케이블을 대체해 산소 및 수분을 차단하는 '커버 레이'를 보여 주고 있다.오대근기자 /2019-08-0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김경도 진영글로벌 대표가 4일 회사 실험실에서 기존의 와이어 케이블을 대체해 산소 및 수분을 차단하는 '커버 레이'를 보여 주고 있다.오대근기자 /2019-08-04(한국일보)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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