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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사 저 검사 끼워 넣어야 돈 버는 ‘과잉진료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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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사 저 검사 끼워 넣어야 돈 버는 ‘과잉진료의 유혹’

입력
2019.08.21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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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케어의 부메랑] <하> 과잉진료 부추기는 제도

건보 당기수지 지난해 1700억 적자… ‘행위별 수가제’ 안 바꾸면 ‘문재인케어’ 지속 어려워

20일 오후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일 오후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부산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윤모(79)씨는 지난 1일 새벽5시에 가족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집을 나섰다. 이날 오후로 예약한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판막 관련 진료를 처음으로 받기 위해서다.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지만 의사가 직접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며 부산대나 동아대 병원이 아닌 서울아산병원으로 올라가길 권했다. 윤씨의 아들은 기자에게 “요즈음엔 건강보험이 돼서 검사비도 싸고 하니까 이왕이면 좋은 병원으로 왔다”고 말했다.

파킨슨병 환자 정모(73)씨는 전남 광주에 살지만 지난해부터 수서발 고속철도(SRT)를 타고 아산병원을 다니고 있다. 아산병원 의사가 이제 지역 병원으로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정씨는 계속 아산병원 외래에 다니고 있다. 정씨는 “전남대병원을 못 믿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어차피 전(남)대병원이나 아산병원이나 가격 차이가 별로 없어서 이왕이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그동안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았던 비급여 영역이 차례차례 급여화되면서 환자들의 부담이 크게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늘도 짙다. 7년 연속 흑자였던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지난해 적자로 전환하는 등 재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기공명영상(MRI) 등 고가 검사와 2, 3인실 입원비 급여화로 본인부담금이 크게 낮아지자, 환자들의 5대 대형병원(서울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으로의 쏠림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 누구나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가격 부담을 낮추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고가 진료에 대한 가격 부담이 줄어들면 민간 병원이의 이익 추구 동기와 맞물려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나 시술을 유도하는 등 과다 진료를 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는 궁극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의료행위 한 건당 진료비를 책정하는 방식의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량을 늘리는 쪽으로 동기를 유발하기 때문에, 문재인 케어가 지속가능하려면 결국 의료 지불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왕이면 서울 큰 병원에서’ 빅5 쏠림 가속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최근 발표한 ‘2018년 진료비 주요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요양급여비용은 모두 77조8,168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0.2% 증가했다. 요양급여비용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이용한 의료서비스에 지불된 액수로, 본인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 지급금을 합친 금액이다. 이 비용의 증가율이 두 자릿수가 된 것은 일시적 요인으로 급증한 2016년을 제외하면 201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2016년은 전년 대비 11.4% 증가했는데, 전년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로 의료 이용이 일시적으로 급감했다가 회복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했다.

지난해 진료비 통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진료비 증가율이 각각 12.4%, 14.0%로 일반 병원(8.4%)과 의원(10.9%)의 증가율에 비해 훨씬 컸다는 점이다. 지난해 급여화가 진행된 항목이 MRI, 상복부 초음파 등 고가 검사와 2, 3인실 입원비 등 종합병원과 일반 병원의 비용 차이가 컸던 분야에서 이뤄지면서 환자들이 이왕이면 대형병원을 찾은 결과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내부에서도 ‘빅5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외래 내원일수 증가율은 △종합병원 4.7% △병원 2.6% △의원 2.2% △상급종합병원 0.9% 등이었지만 빅5병원로 한정하면 4.7%에 달했다. 입원일수 역시 종합병원이 2.1%로 가장 크게 늘었는데 상급종합병원은 0.1% 증가에 그쳤으나 빅5병원은 4.3%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같은 쏠림 현상이 지난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선택진료비(특진비) 단계적 폐지 등이 이뤄지면서 문재인 케어 이전부터 나타났고, 정부 역시 “문재인 케어 때문만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재인 케어가 ‘이왕이면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싶었던 의료 소비자의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가격 장벽을 낮춰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빅5병원을 포함한 민간 대형 병원들이 더 많은 의료행위로 실적을 낸 의사에게 성과급을 몰아주는 제도까지 운영(한국일보 7월 11일자 11면)하는 등 ‘더 많은 진료행위’를 유도하는 상황이어서, 지불체계의 근본적 개편 없이 보장성 강화만을 추진할 경우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실제로 비급여의 급여화와 상급병원 쏠림 현상으로 인해, 2011~2017년 7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던 건강보험 연간 당기수지는 지난해 1,77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적자 폭은 3조166억원으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한다. 다만 적자 폭을 매년 줄여나가 2023년에는 8,681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행법상 연간 건보 예산의 20%까지 지원하도록 돼 있는 국고보조금 역시 2011년 13%에서 최근 수년간 11%대 지원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매년 보험료 인상률을 3.5% 정도 선에서 묶겠다는 계획만 내놓고 있을 뿐 건보 재정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진료행위를 늘리면 늘릴수록 병원 측이 돈을 버는 현행 의료 지불체계 자체를 변화시켜 꼭 필요한 ‘적정 진료’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해야 문재인 케어의 안착과 건보의 재정 안정성이 병립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나라에서 대 주니 MRI 부담없이 찍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과다ㆍ과잉진료의 근본 원인으로 ‘행위별 수가제’라는 현행 의료 지불 체계를 꼽는다. 행위별 수가제란 진료 입원 수술 처치 처방 등 의료행위 하나하나마다 수가(酬價ㆍ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주는 서비스 비용)를 책정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행위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으므로 민간 병원에 과다진료의 유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로 낮아진 가격장벽은 과다진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비급여였던 MRI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되자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나라에서 돈을 대주니 부담 없이 찍어봅시다’라고 촬영을 유도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환자들도 부담이 적어서 그런지 의사들이 권유를 하면 별 말 없이 따른다”고 말했다.

병원들은 필수의료의 수가가 원가에 못 미치게 책정돼 있는 게 과다ㆍ과잉진료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장비나 재료에 비해 수술 등 사람이 손으로 하는 필수의료의 수가는 원가에 못 미치게 책정돼 있어 병원들은 수술 전후 필요 이상의 검사나 비급여 시술을 추가하거나 비급여 수술 재료를 사용하는 식으로 원가 보상을 꾀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의사들은 환자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판단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수익을 위해 불필요한 검사까지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시술이나 수술 시 비급여 수술재료 등을 사용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수술 등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정상화를 전제로, 행위별 수가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신포괄수가제’ 확대와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의 점진적 이행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포괄수가제란 입원 치료 시 입원료, 처치 등 서비스는 포괄수가로 묶고, 의사의 수술, 시술 등은 행위별 수가로 별도 보상하는 제도로, 지난해부터 정부가 민간 의료기관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가치 기반 지불제도란 의료의 질과 비용에 대한 성과 측정을 통해, 의료기관이 과다 진료나 과소 진료가 아닌 ‘적정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어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일차의료 강화를 중심으로 한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문재인 케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수 요소로 지적된다. 중증 질환이 아닌데도 쉽게 상급 의료기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과잉 검사 과잉 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 김양균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국민들에게 원하는 의원을 지정하고 그곳을 거쳐야만 상급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주치의제 비슷한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급성기(질병 발생 직후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 응급치료가 필요한 시기) 치료가 끝난 후 동네 병의원으로 회송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일선 병의원에서 최신 의료기술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회송 환자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일차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보수 교육을 실시하고 의원들이 여기에 참여하면 인증을 해 주는 제도 도입 등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고 일차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현재 의료계 등의 의견을 구하고 있다.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견을 수렴해 이달 말~다음달 초에 발표하고 중장기적인 과제는 연말께 다시 한번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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