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성당 인근에 세워진 샤를마뉴 기마상. 나폴레옹은 황제 즉위식을 앞두고 노트르담 대성당 입구에 샤를마뉴 기마상을 세웠지만 관리가 안 돼 훼손되고 없어졌다. 현재의 동상은 1882년 샤를 루이 로셰Charles Louis Rochet 형제가 만들었다. 위키미디어 제공

지난 4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이 불길에 휩싸였다. 불은 15시간 만에 진압되었지만 ‘숲’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성당의 지붕은 소실되고 말았다. 화재 현장에는 필자의 눈길을 끈 동상도 하나 있었다. 바로 나폴레옹이 황제 즉위식을 앞두고 세웠다는 샤를마뉴 기마상이다(나폴레옹이 세운 동상은 훼손되어 없어졌고, 현재의 기마상은 1882년에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샤를마뉴(Charlemagne)는 8세기 프랑크왕국 카롤링거왕조의 왕으로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서유럽의 대부분을 통일했다. 800년 12월 25일에는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신성로마제국으로 이어진) 서로마제국 황제 자리에 올랐다. 황제가 된 그는 교회와 수도원을 곳곳에 설립했다. 또 문맹이었던 그가 뒤늦게 글을 깨친 뒤에는 카롤링 소문자라 불리는 서체를 만들게 하여 수많은 책을 발간했고, 학교와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과학과 예술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시기를 카롤링거왕조 르네상스라 한다. 그의 업적을 보노라면 과연 ‘마뉴(magneㆍ대제)’라는 칭호가 붙고도 남을 만하다.

와인 칼럼에 이 위대한 왕을 등장시킨 까닭이 있다. 샤를마뉴 역시 와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190㎝가 넘는 키에 신체 건장한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전장을 누볐다고 한다. 특히, 하얀 머리카락과 길고 윤기가 나는 하얀 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야말로 ‘그레이 스타일’의 원조 격이라 할 만하다.

샤를마뉴의 모습. 하얀 머리와, 하얀 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위키미디어

그에겐 이 수염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다. 샤를마뉴는 와인 애호가답게 유럽 각지에 포도밭을 많이 소유했다고 한다. 특히 부르고뉴 지역의 코르통 언덕에서 나오는 레드와인을 좋아했는데, 와인을 식사 때 세 잔 이상 마시지 않을 만큼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그런 그도 관리가 안 되는 것이 있었으니. 와인을 마실 때마다 조금씩 흘러내린 와인 탓에 하얀 수염이 붉게 물드는 것이었다. 왕비 루이트가르트는 왕에게 화이트와인을 마셔보라고 권했다. 곧, 샤를마뉴는 코르통 언덕의 볕이 잘 드는 가장 좋은 포도밭의 레드 품종을 뽑아내고는 그 자리에 화이트 품종을 심게 했다.

이 밭은 오늘날 프랑스 부르고뉴 코트도르(Côte d’Orㆍ황금의 언덕)의 알록스 코르통, 페르낭 베르줄레스, 라두아세리니 세 마을이 공유하고 있다. 샤를마뉴는 이 밭을 775년 솔리외의 성 앙도슈 수도원(Saint-Andoche de Saulieu)에 헌납했는데, 이곳에서 만든 와인이 코르통 샤를마뉴(Corton-Charlemagne)다.

프랑스의 코르통 언덕. 이 언덕에는 세 개의 그랑크뤼 AOC(AOP)가 있다. 코르통 그랑크뤼 밭에선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코르통 샤를마뉴 그랑크뤼 밭과 샤를마뉴 그랑크뤼 밭에선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샤를마뉴 그랑크뤼는 원산지명만 남아 있고, 코르통 샤를마뉴에 포함된다. 위키미디어

코르통 샤를마뉴는 몽라셰, 뮈지니와 함께 샤르도네 100%로 만든,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최고급 그랑크뤼 화이트와인이다.

샤를마뉴는 와인을 즐긴 만큼 포도 농사와 와인 양조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 이른 봄날, 그는 요하니스베르크의 언덕에 쌓인 눈이 다른 곳보다 먼저 녹는 것을 보고는,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게 했다. 그 동안 사용해오던 달력도 바꿨는데, 10월을 빈두메마노트, 즉 와인의 달-포도 수확의 달로 명명했다. 더 나아가 와인 생산과정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라는 포고령을 내릴 정도였다.

그가 이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평생을 전장을 누비며 얻은 경험 때문이었다. 전장에 나갈 때 그는 와인을 각별히 챙겼다. 물을 소독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와인은 꼭 필요한 보급품이었다. 또 곳곳에 세운 교회와 수도원에서 미사와 성찬식에 사용할 와인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산자가 만든 코르통 샤를마뉴. 왼쪽부터 보노 뒤 마르트레, 조제프 드루앵, 코쉬 뒤리. 각 생산업체 홈페이지 화면 캡처

샤를마뉴의 여러 업적을 살피는 동안 우리 역사의 위대한 왕이 떠올랐다. 4군 6진을 개척해 영토를 확장했고 한글을 창제했으며, 학문, 예술, 문화, 과학 등 여러 방면을 고루 진흥시킨 세종대왕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폴레옹이 노트르담대성당에서 황제에 즉위할 때 샤를마뉴 ‘코스프레’를 한 것도 이해할 수 있겠다. ‘샤를마뉴 검’을 차고 진품이 아닌 ‘샤를마뉴 왕관’을 만들어 쓰고는 스스로 황제가 된 그는, 자신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만천하에 공표하고 싶었을 게다. 나폴레옹은 와인도 좋아했다는데, 그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아무튼, 나폴레옹에겐 샤를마뉴가 필요했고, 지금 나에게도 ‘샤를마뉴’가 필요하다!

시대의 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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