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극복한 ‘산업 의병’들] <2> 명성티엔에스
“국내는 일본ㆍ독일 장비만 찾았지만 中 수요 덕에 결실”
전기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2차전지(배터리)에는 분리막이라는 핵심 소재가 들어간다. 배터리에서 전기를 만드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해 이온만 통과시키는 소재로, 배터리의 안전성을 결정짓는다. 때문에 분리막은 배터리 재료비 원가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싼 부품이다.
분리막을 만드는 데는 ‘클립’이란 핵심 부품이 필요하다. 밀가루를 반죽해 두드리고 당겨주고 편 뒤 잘라내 칼국수 면을 뽑듯 분리막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료공급, 압출, 냉각성형, 연신(길이를 늘임), 추출, 코팅 등 5,6단계의 복잡한 공정을 거친다. 이 때 분리막으로 쓸 고분자화합물 필름을 잡아당겨 늘이는 장비를 클립이라 한다.
클립은 배터리 분리막을 제조하는 설비 시스템에 2,000개가 넘게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2016년 이전까진 주로 일본에서 수입했는데 개당 가격이 100만원에 달했다. 분리막 생산 설비 시스템 하나를 갖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100억원이라면 클립 값으로만 20억원 넘게 써야할 정도였다.
그런데 국내 중소기업이 클립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서 생산원가 개당 가격을 40만원으로 낮췄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낸 기업은 명성티엔에스다.
명성티엔에스 연구개발 책임자 이호철 이사는 일본 수출 규제가 본격화한 최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클립을 국산화하지 못했으면, 이 부품 하나 때문에 2차전지 분리막 전체 생산 설비를 만들수 없게 되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2001년 창업한 명성티엔에스는 원래 섬유제조 설비 업체였다. 2006년 디스플레이 설비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고 2010년에는 분리막 설비 제조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분리막 생산라인 전체를 ‘턴키(처음부터 끝까지 일괄 공정)’로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국내에서 분리막 제조 설비를 턴키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명성티엔에스가 유일하다. 세계적으로도 일본의 두 개 업체, 독일의 한 개 업체 정도뿐이다.
이호철 이사는 “일본이 사실상 독점하던 클립을 국산화하기 위해 일본 제품을 분해해 역으로 설계해가며 개발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당장 클립 수출까지 규제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분리막 제조 설비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 휴대용 전자기기에 이어 전기차까지 가세하며 그 속에 들어가는 2차 전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분리막 제조 설비 분야는 일본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절반 가까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명성티엔에스가 급성장하며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이사는 “독일은 분리막 생산 설비 제조에 1년 6개월에서 2년, 일본은 1년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8개월에서 길어야 1년으로 기간을 단축해 분리막 제조 업체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덕에 명성티엔에스의 매출은 2016년 260억원에서 2017년 646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매출의 70%가 수출에서 나오는데, 대부분 중국 기업으로의 수출이다.
이 이사는 “국내 분리막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일본, 독일 업체와의 계약을 선호한다”며 “우리 중소기업의 장비에 대해 선뜻 검증해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산화를 통해 장비를 개발해도 이를 구매해줄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국내 시장을 뚫기 어렵다는 생각에 중국으로 눈을 돌렸는데 중국 시장이 생각보다 커지면서 도전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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