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 주최 측이 협박성 항의 쇄도로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기획전을 3일 만에 중단 결정 내린 것을 둘러싸고 문화ㆍ예술의 자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시행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 여부를 거론하며 외압 논란을 자초했던 일본 정부는 전시 중단 결정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주최 측은 지난 4일 아이치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 마련된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ㆍ그 후’ 전시장 입구에 가설 벽을 세워 관람객들의 출입을 막았다. 앞서 위안부를 표현한 ‘평화의 소녀상’ 전시에 대한 일본 내 우익들의 테러와 협박성 항의가 폭주한 데 따른 조치였다. 또 일본 정부가 보조금 지원 여부를 검토한다고 밝혔고,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 나고야시장은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시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관할 지자체인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현 지사는 5일 기자회견에서 가와무라 시장의 발언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 위반 혐의가 짙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행정이나 관공서 등 공공 부문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시 중단 결정에 대해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시비용이 420만엔으로, 모두 기부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와무라 시장은 기존 주장을 반복하고, “시민의 혈세로 전시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어떤 절차를 거쳐 전시를 결정했는데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구 주장했다.
해당 기획전에 참가한 조형작가 나카가키 가쓰히사(中垣克久)도 이날 도쿄(東京)신문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헌법 9조 수호와 야스쿠니(靖国)신사 참배의 어리석음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 작품은 2014년 정치적 논란으로 도쿄도미술관에서 철거됐다가 이번 기획전에 출품됐다.
그는 테러 위협 등을 이유로 전시가 중단된 것에 대해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해 경찰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비를 강화하는 절차를 건너뛰고 곧바로 전시 중단을 결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5년 전에도 죽이겠다는 얘기를 들었고, 협박 전화가 미술관과 자택에 잇따라 걸려 왔다”면서 “(이번 전시 중단으로) 협박이나 폭력을 긍정하는 일이 돼 버렸다. 소란을 피우면 전시회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고 말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주최 측이 이렇게 쉽게 굴복한 사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선 “순수 예술은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는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작품을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평가하고 반박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며 “(일본에서) 그런 자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그는 “(한일관계가 악화한) 이런 시기에 소녀상을 전시하는 것은 (일본 사회의) 통념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보조금 지급 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선 “허용할 수 없는 발언으로, 문화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스가 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보조금 발언이 전시 중단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교부하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답변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전시에 협박 전화와 메일이 접수되고 있는 것에 대해선 “폭력이나 협박은 없어야 한다”며 “형사사건으로 다룰 것이 있다면 수사기관에서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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