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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 “한일 위기 슬프고 유감…양국 작은 EU처럼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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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 “한일 위기 슬프고 유감…양국 작은 EU처럼 나아가기를”

입력
2019.08.08 04:40
수정
2019.08.08 09:5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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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합작 애니 ‘안녕, 티라노’ 음악감독 “아베, 사과할 것은 확실히 사과해야”

애니메이션 영화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에서 음악을 맡은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은 “한중일이 함께 만드는 영화라서 참여하게 됐다”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캐슬 제공
애니메이션 영화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에서 음악을 맡은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은 “한중일이 함께 만드는 영화라서 참여하게 됐다”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캐슬 제공

정치가 대립과 불신, 혐오를 향해 치달을 때, 문화예술은 골을 메우고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불거진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 한국과 일본의 문화예술인들이 더욱 활발히 만나야 하는 이유다. 예술가에겐 국적이 있지만 예술작품엔 국적이 없다. 14일 개봉을 앞둔 애니메이션 영화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가 그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안녕, 티라노’는 한국 영화사 미디어캐슬이 기획, 제작, 투자를 총괄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시즈노 코분 감독이 연출을, ‘아톰’을 만든 일본의 데츠카 프로덕션이 애니메이션을 맡은 합작 영화다. 중국이 순제작비 49억원 중 15%를 댔다. 중국에선 올 가을, 일본에선 내년 상반기에 개봉한다.

한ㆍ중ㆍ일이 손으로 빚어낸 동심의 세계.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板本龍一ㆍ67)가 선뜻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유다. 영화 ‘마지막 황제’(1987)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과 골든글로브, 그래미어워드를 모두 수상한 첫 아시아인이자 전자음악, 클래식, 팝을 아우르며 전위적인 음악을 선보여 온 작곡가로 40여년간 음악을 해왔지만,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은 ‘안녕, 티라노’와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1987), 단 두 작품뿐이다. 최근 이메일로 만난 사카모토 감독은 “평소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자주 보지도 않지만, 한ㆍ중ㆍ일이 함께 만드는 영화라는 점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꼭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 미디어캐슬 제공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로 국경을 넘고 음악으로 화합하고자 했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최근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그는 “무척 슬프고 유감스럽다”고 했다. 갈등을 촉발한 아베 신조(安倍晉三) 정부를 향해 “어린애처럼 고집 부리지 말고 이웃으로서 사과할 건 확실히 사과해야 한다”고 따갑게 비판하기도 했다. “2000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로 한국과 일본은 ‘작은 유럽연합(EU)’처럼 돼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우선적으로 여권이 필요 없는 자유 왕래를 이루고, 미래에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화도 통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위기를 겪고 있지만 장래에는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사카모토 감독은 1990년대부터 지구 환경과 생명, 반전, 평화를 위해 활동해 온 사회운동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노출 피해자를 돕기 위해 2012년부터 탈원전 록 콘서트를 열고 있고, 2015년 아베 정부의 안보법에 반대하는 시위에도 나서며 꾸준히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해 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공연 당시 남북한 정상의 만남과 한반도 평화를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행동하라(Think pessimistically, Act optimistically).” 사카모토 감독의 신조다. “솔직하게 말하면 산처럼 쌓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특히 환경 문제가 심각하죠. 이미 때는 지났다고 할까요. 전 세계 인구를 격감시킬 사태가 다가오고 있어요. 크게 반성하고 진로를 변경하지 않으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룡 집단 내에선 소수자인 티라노와 프논은 용기와 희생으로 자신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을 이겨낸다. 미디어캐슬 제공
공룡 집단 내에선 소수자인 티라노와 프논은 용기와 희생으로 자신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을 이겨낸다. 미디어캐슬 제공

사카모토 감독의 세계관은 ‘안녕, 티라노’에도 투영됐다. ‘안녕, 티라노’는 저물어 가는 공룡의 시대에 육식을 하지 않는 육식공룡 티라노와 날지 못하는 익룡 프논이 그들만의 천국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무자비한 육식공룡들의 위협뿐 아니라 초식공룡의 집단 이기심, 종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 현실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 영화의 사상과 가치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화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사상이 배외주의적이거나 차별을 조장한다면 함께 작업할 수 없죠. 반대로 사상에 공감해도 영화로서 훌륭하지 않다면 선택하지 않습니다. ‘안녕, 티라노’에 담긴, 다른 종 사이의 우정, 평화와 공존이라는 세계관에는 매우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위해 주제가까지 총 34곡을 작업했다. 때로 밝고 때로 애잔한 음악들이 티라노와 프논의 험난한 여정을 힘껏 응원한다. 사카모토 감독은 “프논이 하늘을 비상하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도 “음악이 이야기 뒤로 물러나 빛과 그림자, 바람처럼 느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은 “체력이 따라 주는 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을 확실하게 구분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의 음악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은 “체력이 따라 주는 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을 확실하게 구분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의 음악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2014년 인후암 투병으로 1년간 활동을 쉬었던 사카모토 감독은 2015년 할리우드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복귀한 이후, 인간에 의해 조율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탐구하며 음악 세계를 더 넓혀 가고 있다. 2017년 한국 영화 ‘남한산성’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얼마 전 대만 차이밍량(蔡明亮) 감독의 신작 ‘너의 얼굴’에도 참여했다. 그는 “한 명의 아시아인으로서 최근 아시아 영화의 성장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안녕, 티라노’ 이후에도 한국 영화와 인연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한국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즐겨 봅니다. 한국 음악인과의 교류도 깊어졌으면 합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팬(그는 백남준에게서 영향받았고, 이우환과 교류하고 있다)이며 전통 공예와 음식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와 제주도를 여행하며 오래 머물고 싶은 꿈도 꾸곤 합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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