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5당 의원 10명으로 구성된 국회 방일단이 지난 1일 1박2일간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데 대해 ‘성과 없이 왔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일본 집권당의 2인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의 면담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빈손 외교’를 자처했다고 꼬집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 실망해야 할 대목은 다른데 있다. ‘용어 사용’에 신중하지 못한 점이다. 방일단 의원들이 ‘징용공’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여기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단장을 맡았던 서청원 무소속 의원, 더불어민주당 맏형이었던 김진표 의원, 진보정당 대표였던 이정미 정의당 의원 모두 기자회견에서 징용공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징용공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쓰는 ‘강제동원’, ‘강제징용’과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이 ‘강제’란 표현을 쓰지 않는 건 ‘징집된 노동자’란 뜻을 강조해 합법적 절차에 따라 모집했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 불법은 없었다고 정당성을 부여한다. 일본 포털사이트엔 ‘징용공 소송문제’로 검색되기도 하는데, ‘일본기업의 모집에 의해 노동한 그 유족들의 소송문제’라며 제3자의 시각으로 풀어놨다. 일본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는 예전부터 징용공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해 왔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일본정부는 ‘징용’을 1944년 이후 국민징용령에 따른 것이고, 국제법상 강제노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의미로 쓰고 있다. 징용이란 말이 1944년 이후 징용령에 따른 것만 의미하거나, 1930년대 말부터 이뤄진 ‘할당모집’과 ‘관 알선’은 강제가 아니라는 오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대법원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김진표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결국 징용공 문제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고, 서청원 의원은 “일본 대표들이 똑같이 (한국이) 징용공 문제에 대한 배상 약속을 저버렸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정미 의원은 “지금 발생한 징용공 문제도”라고 언급했다. 국제적으로도 강제징용, 특히 강제동원이라고 일부러 표현하는 게 맞다. 외교에서 글자 하나가 갖는 의미와 파급력을 따져봐야 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에서 대법원 판결을 거듭 ‘징용공 판결’이라고 했다가 위성곤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사례를 왜 몰랐을까.
단어 하나 잘못 사용한 걸 지적하는 게 과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적지’에 가서 상대 측 ‘책임회피 프레임’에 장단을 맞춘 무지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류호 정치부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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