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로 변한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소(8일 자 1ㆍ2면)’가 한국일보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지면서 통한의 현장을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 현지 한인들이 현장을 처음 방문한 5년 전에도 소녀상 건립 논의 등이 있다가 흐지부지됐다. 한일 양국을 두루 챙겨야 하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난색을 표한 게 주된 이유다. 그러나 그 이면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밀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9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4년 9월 동포 신문인 ‘한인포스트’에 ‘스마랑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는 기사가 실렸다. 스마랑은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의 주도(州都)로 일본군 위안소가 위치한 암바라와 북쪽에 있지만 한데 묶어 스마랑 지역으로 통칭된다.
국내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보도로 현지 한인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정선(58) 한인포스트 대표는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대한 호응이 뜨거웠다”고 회고했다. 이에 힘입어 정 대표는 인도네시아 관광부를 찾아가 ‘한국 군속, 일본군, 네덜란드 등 연합국 포로가 머물던 역사의 현장인 암바라와 성을 관광지로 개방→관광객 유입 확대→소녀상 건립’이라는 구상을 설명했다. 당시 위안소 옆에 붙은 암바라와 성은 군사 보호 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공식적으로는 차단돼 있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동양인들이 가끔 다녀갔다”는 게 현장 근무 군인들의 증언이다.
이 구상은 인도네시아 당국으로부터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인도네시아에 공을 들인 일본은 인도네시아 정계, 재계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지금도 한국 기업과 경쟁이 붙으면 뒤에서 막강한 로비 공세를 퍼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대표는 “1년 뒤 암바라와 성은 일반에 공개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광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찾아간 1일에도 사진을 찍거나 주위를 둘러보는 현지 젊은이들을 성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폐허로 변한 위안소 건물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고 화장실로 변한 방만 이용했다. 물어봐도 위안소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창고쯤으로 여겼다.
초기에 우리 정부도 전담 영사를 배정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정 대표는 “위안소 영상 및 사진, 성 노예 위안소 운영 죄목으로 사형당한 암바라와 포로수용소 일본군 대장에 관한 법정 자료 등을 전달했다”라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말뿐이었다”고 밝혔다. 1년 뒤인 2015년 12월 당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 비공개 합의 문건에는 ‘제3국 위안부 기림비 설치 미(未)지원’이라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정 대표는 “결국 인도네시아 위안소 관련 자료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됐고, 합의 이후에는 무응답, 무반응이었다”고 주장했다. 한인회 관계자는 “민간에서 소녀상을 세우려는 움직임도 대사관 측에서 제동을 걸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재인도네시아대구경북동문회에서 안내판이라도 세우자는 얘기가 나왔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위안소 주변에 살며 관련 자료를 모으는 이태복(59) 시인은 “이번에도 호들갑만 떨다 잊혀질 것 같아 안타깝다”라며 “주변 땅을 매입해 기념관이라도 짓고 싶다”고 했다. 정 대표는 “여성인권 신장, 인권운동 측면에서 현지 지방정부 또는 시민단체와 협력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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