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학 다른 전공 교수 57인이 선정… ‘광장’은 5위 올라
“젊은 세대들은 기존의 고전 목록에 대해 ‘와 닿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말해요.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현재는 자신들의 현재와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다고 보는 거죠.”(유현주 연세대 교수, 독문학ㆍ매체이론 전공)
“우리 시대는 대단히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놓여 있다고 봐요. 명저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의 삶을 구속하면서도 우리를 새로운 체제로 전이시켜줄 수 있는 책 아닐까요.”(이권우 경희대 특임교수, 출판평론가)
지난 달 12일 서울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KNOUㆍ방송대)에 모인 교수 5명의 얼굴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20세기 이후 발표된 책 중 우리 시대에 맞는 ‘명저’를 선정하기 위해 벌어진 난상 토론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현대 명저는 106선(인문ㆍ사상 30종, 사회과학 25종, 자연과학 21종, 문화예술ㆍ기타 30종). 지난 3월부터 300권의 책을 두고 벌인 넉 달간의 씨름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OO대 권장도서’, ‘OO기관 추천도서’는 익히 봐왔다. 그러나 이번에 선정된 책들은 산발적으로 소개된 국내외 명저 목록을 한데 모아 새롭게 추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명저 추천 목록의 ‘끝판왕’인 셈이다. 선정위원들의 진용도 화려하다. 주최는 방송대 출판문화원 ‘KNOU위클리’가 했지만,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자를 모시기 위해 학교와 전공에 구분을 두지 않았다. 서울대 등 국내 대학은 물론 미국 시카고 신학대 등 해외 대학에 재직하는 57명의 교수들이 참여했다. 전공 또한 국문학에서부터 치의학까지 다양하다.
선정 기준은 고전의 명성에 무조건 기대기보다는, 현재 우리 시대에서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책을 우선시했다. 예를 들어, 한국문학에선 ‘토지’(박경리), ‘태백산맥’(조정래)이 끝까지 경합을 벌였지만 두 권 다 최종 목록에선 빠졌다. 대신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한강)가 이름을 올렸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비이성적, 불합리성을 문학으로써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선정위원장을 맡은 정준영 방송대 교수(사회학)는 “현재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던 책, 사고 틀을 넘어서는 데 기여한 책들을 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득표순으로 보면 ‘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쿤) 34표, ‘총균쇠’(재레드 다이아몬드) 28표, ‘감시와 처벌’(미셸 푸코) 22표,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 22표, ‘광장’(최인훈) 19표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학교도, 전공도 다른 교수들이 의기투합한 데는 사문화 돼 가는 추천 도서 문화를 바꿔보기 위해서다. 그 동안 교육기관이 추천 도서를 선정하고 나면,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안내해주는 후속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이권우 교수는 “추천도서가 한 대학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는 목록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방송대는 다양한 독서 가이드라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책 소개에 그치지 않고 현재적 시각에서 가치를 짚고,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등을 담은 ‘해제’를 추가로 제공키로 했다. 이 밖에도 책의 숨어 있는 의미를 분석한 ‘비(秘)급 고전’이란 별도의 교양프로그램도 제작해 방송대학TV를 통해 방영한다는 방침이다. 연말에는 관련 심포지엄도 개최할 예정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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