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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장관 직행 봇물… 文정부 ‘폴리페서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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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장관 직행 봇물… 文정부 ‘폴리페서 내각’

입력
2019.08.12 04:40
수정
2019.08.12 13:3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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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개각서도 8명 중 4명 발탁… 전체 장관급 22명 중 9명, 40%차지

교수 출신이 전문성 등 강점 불구, 부처 장악ㆍ정무 능력 등엔 의문

올 1월 중앙행정기관 업무평가선 교수 출신 박상기 법무 ‘미흡’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구성원인 장관 및 장관급 인사 10명 중 4명이 대학 교수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지식과 학문적 경험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 지식인의 사회 참여(앙가주망)라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 곧바로 장관 자리로 옮기는 것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장관급 인사는 부처 업무를 장악하고 공무원을 이끌어 갈 행정 능력과 국회,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해야 하는 정무 능력을 두루 겸비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과거 교수 출신 장관의 상당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폴리페서 내각’이 꾸려지면서 향후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文, 16명의 현직 교수 장관 및 장관급 후보로 지명

청와대는 8일 장관 및 장관급 인사 8명을 발표했는데, 이 중 조국(서울대) 법무부, 최기영(서울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정옥(대구가톨릭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조성욱(서울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등 4명이 대학에 재직 중이다.

여기에 기존 김연철(인제대) 통일부, 박능후(경기대) 보건복지부, 조명래(단국대) 환경부, 문성혁(세계해사대) 해양수산부 장관과 박은정(서울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까지 합치면 내각 구성원 중 9명이 교수 출신이다. 전체 장관급 인사 22명 중 40%를 차지하고 있다. 앞서 2017년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서는 22명 중 7명(31%)의 장관급 인사들이 대학 교수에서 자리를 옮겼던 것을 감안하면 비중이 더 커졌다. 여기에 후보로 지명받았다가 중도에 물러나거나 지명 철회된 조대엽(고려대) 고용노동부, 박성진(포스텍) 중소벤처기업부, 조동호(KAIST) 과기부 장관 후보자까지 감안하면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16명의 교수들이 장관ㆍ장관급 인사로 선택 받았다.

문재인 정부 교수 출신 장관급 인사. 그래픽=강준구 기자
문재인 정부 교수 출신 장관급 인사. 그래픽=강준구 기자

◆상당수 교수 출신 장관은 부처 장악과 정무 능력에서 약점

교수 출신 장관 수가 많다는 것만으로 비판받을 수는 없다. 문제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느냐는 점이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한 공무원은 문재인 정부의 교수 기용이 지금까지는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장관은 무엇보다 공무원들을 움직이게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고, 여러 부처에서 개혁 추진 속도가 더딘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부처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정확히 파악한 뒤 공무원들을 설득해서 스스로 뛰게 해야 하는데 교수 출신들은 장악 능력이 부족하고 길어야 2년 남짓인 임기 동안 그 능력을 갑자기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한 공무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장관은 해당 부처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방면을 두루 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교수 출신 장관들은 전공 분야에서 최고일 지 모르지만 이를 폭넓게 보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아쉽다”고 말했다.

특히 정무 능력이 교수 출신 장관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한 여권 인사는 “예산이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권 특히 야당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야당과 강하게 부딪치며 토론도 하고 때로는 읍소도 하는 능수능란함이 있어야 하는데 학자의 길만 걷던 분들이라 그런지 이를 잘 이겨내지 못한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야당 수도 늘었고, 야당들의 정치적 공세가 매우 거세진 탓에 정무 능력이 부족한 장관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심지어 여당 지도부에게 야당을 설득하게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까지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 출신 장관들의 업무 성적표도 이런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무조정실은 올 1월 43개 중앙행정기관(장관급 23개ㆍ차관급 20개)에 대한 업무 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교수 출신 장관이 이끈 법무부(박상기)가 가장 낮은 ‘미흡(하위 20%)’ 을 받았다. 특히 법무부는 배점이 가장 높은 일자리ㆍ국정과제(100점 만점 중 65점)와 소통 만족도(5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교수 출신으로 경기도 교육감을 지낸 김상곤 사회부총리가 이끈 교육부도 낙제점인 미흡을 받았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해 5월 총리실의 사전 평가에서도 하위 그룹에 포함됐다. 이 평가에서는 교수 출신 장관이 이끄는 여가부(정현백)가 국방부, 환경부와 함께 공동 꼴찌 성적표를 받았다. 정현백 장관은 3개월 뒤인 지난해 8월 진선미 장관으로 교체됐다.

문재인 정부 교수 출신 장관급 인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문재인 정부 교수 출신 장관급 인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개혁성, 인사 검증 통과 가능성 보고 교수 선택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교수들을 많이 기용하는 이유는 뭘까. 여권에서는 현 정부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야권의 검증 공세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부의 최대 과제는 적폐 청산이었고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인물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고위 공무원 중 일부는 문 정부의 개혁 임무를 완수하며 부처를 맡기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다는 판단이 섰다”고 전했다.

과거 현역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출신은 ‘현역 불패’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문회를 전후한 검증 과정에서 야당의 공세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야권은 동료 정치인이라도 예외 없이 칼날을 벼르고 사생결단 하듯 공격하고 있다.

장관 후보들을 검증 통과 확률을 기준으로 하나 둘 지우고 나니 남는 선택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교수들이 안전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를 비롯해 사회 참여 활동을 해 온 교수들은 개혁 성향도 지니고 있고, 인사 검증 통과도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위장 전입, 다운 계약서 작성 등 이전 정부부터 교수 출신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후보자들에 대한 지적 사항들에 대한 여론의 비판 강도도 과거보다 많이 무뎌졌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참여연대 “최종 임명 되지 못한 고위공직 후보자 7명” 중 3명은 교수 출신

하지만 그 판단은 실패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병역기피ㆍ부동산투기ㆍ세금 탈루ㆍ위장 전입ㆍ논문 표절 등 5대 배제 원칙을 내놓았지만 인사 검증의 결과는 문제가 많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첫 인사에서 현직 대학 교수 출신인 조대엽 고용부, 박성진 중기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부적절한 언행, 종교관ㆍ역사관 등을 이유로 낙마했다. 청와대는 정권 시작 6개월 만인 2017년 11월 음주운전과 성 관련 범죄 등 2개 항목을 추가해 7대 기준을 제시했지만 인사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대학 교수였던 조동호 과기부 장관후보자는 허위 학회 출장 논란, 아들 호화 유학 논란 등으로 ‘대통령의 지명철회’라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가 지난달 공개한 ‘문재인 정부 2년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평가 및 제안’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약 2년 동안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했던 고위공직 후보자 59명 중 최종적으로 임명되지 못한 인사는 7명이었다. 이중 여야 대립에 따라 동의안이 부결된 1명을 빼면, 나머지 6명은 재산 형성 과정, 허위 혼인신고서 제출, 음주운전과 임금체불 의혹 등 윤리적 문제로 낙마했는데, 3명(조대엽, 박성진, 조동호)이 현직 교수 출신이었다. 교수 출신들이 도덕성에서 오히려 큰 흠결을 남기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청와대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정책 질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자꾸 업무 능력과 관련이 적은 사상 검증, 인신 공격 위주로 흐르고 있다”고 말했지만, 참여연대는 “청문회가 정책 질의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고위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 공직 윤리 부분에 대한 사전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민심은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 인사에 대한 도덕성 검증의 눈높이를 이전보다 훨씬 높게 잡았다”며 “야권의 무차별 공격만 탓하기에는 우리가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장관 지명을 전후해 일어났던 ‘폴리페서 논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준우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조 후보자가 민정수석 임기 동안 서울대 교수를 휴직했다가 다시 복직했고 장관 지명 이후 다시 휴직을 하는 과정을 보면서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어도 부정적 국민정서가 충분히 조성될 수 있다”며 “게다가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 검증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민정수석이었기에 대응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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