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전문가 양승윤 교수
“일본은 한국을 속국으로 거느렸던 기억을 DNA로 가지고 있어요. 그게 바뀌지는 않을 거예요. 임진왜란을 빼면 우리는 일본과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 어려운 싸움이 될 겁니다.”
국내 동남아 박사 학위 1호 양승윤(73)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양 교수는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 한국문화원에서 자신이 번역한 물타뚤리의 소설 ‘막스 하벨라르’ 출간 기념 북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에는 공동 번역자 배동선 작가와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양 교수는 일본의 진면목을 동남아에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매년 강의하는 족자카르타 가자마자대학의 경우 모든 사학과 교수가 일본 장학생”이라면서 “20년 전부터 크든 적든 일본이 꾸준히 챙겨오고 있어서, 동해를 병기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도 잘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약속만 거창하고 잘 안 지키는 우리와 달리 작은 약속도 잘 지키는 게 일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이 동남아에 오랫동안 공을 들이며 신뢰를 쌓았다는 얘기다.
양 교수는 “특히 일본은 위안부 문제 같은 과거사를 결코 후대에 넘기려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거느렸던 기억도 잊지 않을 것”이라며 “그만큼 어려운 상대와 벌이는 힘든 싸움인 만큼 반드시 이기려면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후대에겐 답답한 한반도 주변 4강에서 벗어나 5강이 필요하다”라면서 “그 5강이 인도네시아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소설 ‘막스 하벨라르’는 인도네시아를 350년간 식민 지배한 네덜란드의 총독부 관리가 자국과 현지 토착지배층의 횡포를 고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860년 간행 이후 19세기 네덜란드 문학 최고 걸작으로 꼽혔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면서 네덜란드의 강경한 식민 정책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100여년 후엔 세계 첫 공정무역의 길을 열었다. 자기가 재배한 커피원두를 다국적 기업 수족 노릇을 하는 중간상인에게 헐값에 넘기고 고리채에 시달리는 멕시코 농민들을 본 프란스 환 호프 신부가 1973년 커피협동조합을 만들어 ‘막스 하벨라르’라는 상표를 붙인 것이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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