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식인에 듣는 한일 갈등]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 국제정보대학 교수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은 1965년 맺은 한일협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다. 돈도 주고 국교도 정상화 했으니 모든 게 청산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핵심이 빠졌다.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일협정의 한계점을 꾸준히 지적하며 한일 회담 문서 공개 운동을 펼쳐온 요시자와 후미토시(吉澤文壽) 니가타 국제정보대학 교수는 “한일협정은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은 불완전한 조약이었다”며 “당시의 정치적ㆍ외교적 타협이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피해자들 의사에 반하는 합의를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됐다고 꼬집었다. ‘원칙 없는 화해’가 파국을 불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입에 올렸다.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지만, 꼬일 대로 꼬인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중일 학자들이 모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과제를 토론하는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요시자와 교수를 1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과거사 갈등의 본질을 건드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이 지불한 금액은 일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전제 아래 지급한 보상이다. 보상은 합법적인 행위로 발생한 손실액을 지불하는 것이고, 배상은 불법적인 행위로 일어난 피해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걸 인정한 적 없고, 그 불법적인 침탈로 일으킨 피해를 배상한 적 또한 없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포함해 피해 구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인데.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가 한일협정으로 청산됐다는 데 한국 정부도 동의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2005년에 한국 정부가 공개한 한일 문서를 보면, ‘불법행위로 생긴 손해에 대해선 해결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불법행위로 생긴 손해 대상에는 강제 징용 문제도 당연히 포함된다. 한국 대법원과 정부의 판단은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2015년 한일 양국이 별도의 합의를 내놓았다.
“위안부 문제의 경우 한일 협정 교섭 당시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이 나오고 일본 내부는 물론 국제 사회 압박이 거세지니까 일본이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마지못해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여론 무마용이다. 2015년 합의는 피해자들 인권 회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잘못됐다. 피해자들 동의 없이 합의를 이룬 것부터가 문제였다.”
-1965년 한일협정, 2015년 위안부 합의 등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교훈을 되새겨야 할까.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북한보다 경제 발전이 뒤쳐졌던 한국은 경제 개발 자금이 긴요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는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에 떠밀렸다고 본다. 한미일이 안보를 위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며 역사 갈등을 서둘러 봉합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점에서 2015년 위안부 합의는 1965년 한일협정의 재탕이라 생각한다. 원칙 없는 화해는 바람직하지 않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것에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한일 관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한일 관계가 나빠진 것은 양국 정치와 외교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나 한 해 1,000만명이 양국을 다녀갈 정도로 한일 시민들의 교류는 활발해졌다. 이번 갈등을 일본 국민들에게 역사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식민 지배에서 벌어진 일을 잘 모른다. 계속 이야기하고 알려주면서 이해시켜야 한다. 아베 정권은 언젠가는 수명을 다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함께 지내야 하는 이웃이다. 한국 국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지지한다. 그러나 민간 교류까지 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럴 때일수록 더 활발하게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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