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 영향으로 국내 산업계 일부 업종에서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수출규제 대응 예산을 속도감 있게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기업들이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현안보고에서 오는 28일부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만큼 정부의 기업 지원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일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전략적으로 보호해야 할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ㆍ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 100대 품목을 선정했다. 산업부는 이 가운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일본이 지난달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 소재를 포함하는 20개 품목을 안보상 수급위험이 큰 품목으로 분류해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기술개발에 957억원을 먼저 투입하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ㆍ디스플레이 공정소재, 2차전지 핵심 소재 등 20개 품목의 기술 확보에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향후 1년 안에 공급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또 중장기적으로 개발해야 할 80대 품목은 5년 내 공급안정화를 추진하고 7년간 7조8,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핵심 사업에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방침이다. 해외기업을 인수ㆍ합병(M&A)하고 해외 전문기업ㆍ인력을 유치하는 데도 지원을 확대하고, 환경이나 노동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의 직접적인 피해 상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불확실성 때문에 재고 확충이나 거래처 확보에 나서야 하는 상황 자체가 기업에게는 큰 부담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이날 “일본의 조치는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며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내년부터 중소기업 R&D 사업 지원 체계를 개편해 지원 규모를 크게 늘린다. 기존에는 과제당 지원 규모가 평균 1년간 1억원에 그쳤지만 이 정도 단기, 소액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아이디어 구현(1단계)부터 아이디어 시장검증 완료(2단계), 사업화 성공(3단계) 등으로 구분해 지원 규모를 차등화 한다. 1단계에서는 1년, 1억원 안팎이 지원되지만 2단계는 2~3년간 2억~10억원, 3단계에서는 3년 이상 최대 2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중기부는 또 도전할 가치가 있는 R&D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면책 인정 범위를 확대한다. 기존에는 R&D에 실패하면 투자금 환수나 차후 R&D 사업 참여 제한 등의 조치가 뒤따랐지만, 이제는 도전성 평가 상위 과제(30%)에 대해선 실패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을 방침이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이날 “화이트리스트에 해당되는 품목을 일본과 거래한 중소기업 수는 약 6,000개가 넘는 것으로 현재 파악하고 있다”며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 보완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중소기업 중 ‘히든 챔피언(알려지지 않았지만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생각보다 많다. 대기업들도 이번 계기로 통상적인 거래 이외의 대안을 검토하며 중소기업과의 상호협력을 진행하고 있다”고도 박 장관은 전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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