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6개월 ‘리액션 대표’… 黨지지율 원점
우파통합ㆍ계파청산 등 방치, 실망 키워
기득권 포기 등 승부수가 보수결집 판가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취임 6개월을 맞는 시점에 ‘자유우파 결집론’을 다시 꺼냈다. 보수진영의 분열로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패했으니 내년 총선 전에 한국-바른미래-우리공화 등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 입당의 명분이자 대표 1호 공약이었던 우파 대통합론을 비책처럼 새삼 되뇌니 뜬금없다. 처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통합하겠다는 건지 구체적 그림이 전혀 없다. 그동안 뭘 하다 총선이 눈앞에 닥친 시점에서 공자님 말씀만 늘어놓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황당하기는 도긴개긴이지만 나경원 원내대표가 “바른미래당 내분이 정리된 후 유승민 의원이 서울에서 한국당으로 출마하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한 것이 차라리 솔직하게 와닿는다.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앞세워 당권을 쥔 황 대표가 이제 와서 통합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자기 부정이자 부도 선언에 다름 아니다. 컨벤션 효과와 새 리더십 기대감에 힘입어 5월 중순 국정 농단 정국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당 지지율이 최근 10%대(한국갤럽)로 급락하고 본인의 대권 시나리오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니 말이다. 당 안팎에서 무력한 당 지도부를 질책하는 ‘총선 필패론’이 공공연히 제기되며 난데없이 비상대책위 체제가 거론되는 것도 황 대표가 통합을 출구로 찾은 이유일 게다.
거품이 있긴 했지만 한때 보수ㆍ진보 진영을 통틀어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황 대표가 왜 이렇게 됐을까. 취임 때 약속한 보수 통합과 계파 탕평, 외연 확대와 야성 회복 등 주요 과제의 현주소를 보면 그의 곤궁한 처지는 쉽게 이해된다. 우선 그는 우파 통합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 요청에 걸맞은 도발적 로드맵을 내놓거나 자기 희생을 무릅쓴 승부수를 던진 적이 없다. 이념과 노선 차이로 헤어진 세력을 한 우산 밑에 모으려면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로베이스에서 조건과 역할을 조율하는 작업은 필수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면 자신의 수족을 내치는 헌신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껏 황 대표는 친박에 얹혀 통합의 공간을 더욱 좁혀왔을 뿐이다. “지도자의 덕목은 변화와 결단인데, 기득권에 안주하며 ‘침대축구’하듯 당의 현상 유지에만 골몰”(박형준 전 의원)한다는 지적이 낯설지 않다.
당의 정체성 확립과 관련된 계파탕평의 경우 황 대표는 오히려 반동적이다. 박근혜 문제에 대해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일관해온 그는 최근 TKㆍ친박 편향적 정치행보를 더 강화했다. 평생 꽃가마만 타고 다닌 그로선 지역이든 세력이든, 하나는 잡아야 그나마 당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5ㆍ18 망언이나 막말 소동 등 해당행위가 빈발해도 그저 뭉개는 것이 그의 리더십이다. 청년ㆍ여성층을 찾아다니며 외연을 확대한다고 설쳐도, 누가 주인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당에 누가 눈길을 주겠는가.
황 대표는 자신의 민생 대장정과 국회 패스트트랙 투쟁 등을 통해 야성만큼은 회복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얼마전 그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방관하는 정부를 ‘3무 정권’이라고 질타하고 ‘최후통첩’이라며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반응이 없자 그는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에 앞서 국회 이승만동상 앞 대국민담화 이벤트를 기획했다. 여기서 그는 사면초가ㆍ첩첩산중ㆍ고립무원인 국정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특단의 대책’을 경고했다. 그러나 총선을 향해 잰 걸음으로 달리며 인적ㆍ물적 자원의 총동원 방안을 고심할 때에 통첩, 특단 운운하며 상투적 장외투쟁을 거론하는 것은 야성이 아니다.
황 대표에게 그나마 기회라면 평화민주당의 분당과 바른미래당의 내분으로 야권 재편의 공간이 넓어진 점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황 대표가 진정 우파 결집이 4ㆍ15 총선 승리의 필요조건이라고 판단한다면 늦어도 9월까지 유승민ㆍ안철수계 등과 통합의 큰 원칙을 합의한 뒤 연말까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리액션 대표’ 오명 속에 초라한 6개월 성적표를 받아든 황 대표에게 남은 카드는 ‘사즉생’의 결단뿐이다. 그 결단도 늦으면 소용없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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