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스타일도, 시인 이름도 새롭다. 어떤 시인일까 궁금한데 작품 말미의 작가 이력에는 이렇게만 밝혀 놓았다. “살아감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게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 행복으로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등단년도, 등단지면, 수상 내역으로 채워진 여느 작가 프로필과 다르다. 하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정보로 보인다. 식물이 홀로 꽃 피울 시간을 마련해주면서도 깊은 애정으로 응원하는 화자의 마음이 어린이를 향한 작가의 말과 겹친다.
웹진 ‘비유’(http://view.sfac.or.kr)는 “기존의 등단년도와 출신지면을 밝히는 저자 소개의 형식을 바꿔보기로” 한 이유를 “글쓴이가 글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야말로 독자와의 만남에 더욱 중요한 대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누구의 작품인지에 대한 정보가 작품 독해와 감상을 간섭하거나 왜곡할 수 있고, 이러한 ‘저자성’이 소위 문학 권력의 주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성찰에 바탕한 것으로 보인다.
독립 문예지 성격의 웹진인 만큼 ‘비유’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창작 실험을 하는 페이지도 눈에 띈다. 프로젝트 공모제로 진행되는 ‘하다’ 코너에서는 문학 외 여러 장르 예술가들이 기존 문학 체제를 넘나드는 전위적인 창작 실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비시(非詩)각각’ 프로젝트는 시가 아닌 텍스트들 즉 간판, 벽보, 안내문, 광고 전단지 등 모든 활자와 문장에서 시적인 것, 문학적인 것을 찾으며 과연 시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문학의 개념과 속성이 변함없이 확정되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재규정하면서 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문학을 모색하는 시도일 것이다.
2015년 신경숙 표절 사건,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문예지, 출판 자본, 문학 권력 등 한국 문학 체제 전반과, 그것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문학 자체를 성찰하게 했다. 이후 창간된 독립 문예지들은 대개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문학의 미래를 자유롭고 거침없이 찾아나가는 중이다. 문학 제도에 갇혀 바깥을 보지 못했던 시선이 좀 더 넓고 깊어질 때 우리 삶 또한 그럴 기회를 얻으리라 본다. 문학은 여전히 그만한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믿으니까.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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