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은 어디까지?

※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에서 검찰이 변호사 조들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는 모습.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2’ 37회 캡쳐

“이봐요 검사님, 필요한 것만 가져 가야죠, 다 싹쓸이해서 어떡하라고?”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의 한 장면)

법정 드라마에는 가끔 변호사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사기관 직원과 변호사 사이에 기싸움이 펼쳐지지만, 대개 영장을 치켜 든 수사기관의 승리로 끝난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이렇게 변호사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한다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철저히 지켜져야 할 비밀은 어떻게 되는 걸까? 혹시나 압수수색 대상 사건이 아닌 다른 사건과 관련된 비밀까지 수사기관의 손에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최근 검찰이 대형 법무법인(로펌) 압수수색을 부쩍 늘리면서, 변호사 업계에서는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범위와 대상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변호사들 스스로가 정당한 변호권 범위를 넘어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경우가 존재하는 마당에, 변호사 사무실만 ‘성역’으로 둘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변호사 사무실의 특수성은 어디까지 인정돼야 할 것인가?

◇대형로펌 압수수색에 놀란 변호사들

대형로펌 사무실이 본격적으로 압수수색 대상이 된 것은 몇 년 전부터다. 그리고 대형로펌을 치고 들어간 곳은 주로 특별수사의 중핵인 서울중앙지검이었다.

2016년 롯데그룹 탈세 혐의를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은 5대 로펌인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11월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을 압수수색했고, 올해 2월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애경산업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김앤장을 다시 압수수색했다. 변호사가 직접 범죄를 저지른 사건도 아닌데, 대형로펌을 압수수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검찰에 연속으로 털린 변호사 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변호인과 의뢰인이 비밀리에 나눈 상담 내용을 검찰이 몽땅 가져가 버릴 우려와 함께, 헌법상 재판청구권이 침해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답변서 한 장 써줬는데 검찰이 의뢰인과 짜고 증거인멸에 나섰다는 식으로 압수를 했다”면서 “순수한 변론자료까지 가져가버리는 압수수색 관행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압수수색 영장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보니 싹 압수해 가도 별 수 없다”면서 “피의자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변호사를 피의자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4월 대한변호사협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수사기관의 비밀유지권 침해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로펌을 압수수색하겠다고 압박해 변호사가 증거를 스스로 제출하도록 강요하거나, 변호사에게 피고인과의 상담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언급한 사례도 있었다. 변협 관계자는 “그나마 대형로펌은 수사기관의 압박이 통하지 않아 영장까지 발부된 것”이라며, 중소형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에 대한 비밀유지권 침해 실태가 심각함을 지적했다.

어떤 기관이 비밀유지권을 침해했는가. 그래픽=김경진 기자
◇변호사들 “비밀유지권 법으로 보장을”

변호사들은 법규정 미비를 근본 원인으로 든다. 법이 “변호사는 직무상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할 뿐 ‘비밀을 지킬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례도 변호사 쪽에 불리하다. 대법원은 의뢰인이 보관한 변호인 의견서를 압수한 사건에서 “압수수색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을 법으로 규정, 의뢰인이 밝힌 비밀과 변호인의 법적 조언에 대해서는 제출이나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철저히 보호한다”며 “변호인과 의뢰인간 비밀에 대해 공개를 요구할 수 없도록 비밀유지권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압수당하는 변호사 입장에서 “비밀이 담긴 자료이니 가져가지 말라”고 요구해 봤자, 검찰이 일단 모든 자료를 가져갈 수 있는 절차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압수당한 이후 준항고로 다툴 수 있지만 일단 정보가 넘어가면 원본을 돌려받는 것이 의미가 없는데다, 압수수색 중에 수집된 다른 정보로 인해 별건 기소를 당할 수 있어 ‘을’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변호인에게 조력받을 권리는 헌법상 권리인데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아무 기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법원이 압수수색 대상의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사ㆍ판사들 “변호사에 특권 부여 반대”

그러나 검찰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률상담 내용 등은 압수하지 않고 증거 인멸이나 사건 왜곡에 대해서만 압수했다”고 설명했다. 김앤장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법원도 증거인멸이나 범죄를 모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변호권을 이탈했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했다”면서 “변호사라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것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판사들도 변호사 측 주장에 부정적이긴 매한가지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과거 법원은 변호사가 범죄를 저질러도 법정구속이나 실형 선고를 꺼리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서 “변호사 사무실을 일종의 ‘치외법권’으로 만든다면 범죄의 소굴이 될 것이 뻔하다”고 우려했다. 다른 판사도 “영장판사가 사안별로 판단할 일이지 변호사 사무실을 성역으로 보장해줄 순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이 처음이 아님에도, 유독 대형 로펌들이 당하자 비밀유지권 논의가 나오는 것이 어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아무리 비밀유지권 보장이 변호사 업계의 숙원사업이라지만 범죄 행위에 대한 방어막으로 오용돼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재경지법의 판사는 “변호사만의 문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영장 집행과정의 신뢰성을 높여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해법도 제시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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