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전문가 긴급진단]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상대방 피해만 고려하는 ‘덤 앤 더머’식 대응땐 첨단산업 지위 잃을 것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덕근 교수 제공

“한국과 일본의 첨단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두 나라가 분업을 통해 세계 시장에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9일 인터뷰에서 “한일간 경제전쟁의 확전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단은 경제 문제가 아니었지만 두 나라가 경제 제재를 주고 받으면서 한국과 일본 모두 상대방의 피해만 고려하는 ‘치킨게임(소모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첨단산업이 가치사슬(밸류체인)으로 묶여 있는 상태”라며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에 공급 차질이 생기면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손해를 보는 ‘코리아-재팬 디스카운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진의가 무엇이라고 보나.

“근본적인 이유는 대일 청구권 문제다. 경제가 아닌 문제를 경제 보복 형태로 해결하려는 것인데, 미중 무역갈등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 제재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 나라가 경제 보복에 나서면 상대국도 상승 조치를 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맞대응하고, 다시 일본이 추가 보복을 하는 과정에 더 강력한 조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최근 속도 조절을 하는 분위기인데.

“일본 입장에서는 다른 규제 조치 시행을 앞당길 이유가 없다. 직접적인 수출 규제 없이도 우리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본은 △보복조치에 나선 이유(청구권 문제) △향후 보복조치 전개(수출규제 확대) 등 보여줄 카드는 다 보여줬다. 양국간 접점이 없다 보니 해결 기미가 없는 것이다.”

-일본이 특히 한국의 첨단산업을 노리고 있다.

“첨단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기술 발전 주기가 짧기 때문에 한국의 미래산업 발전에 더 영향을 줄 수 있다. 소재, 부품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가 성패를 좌우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 동안 한일이 분업 체계를 통해서 반도체 등을 세계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해 왔기에 다른 나라들도 이에 의존했다. 그런데 한일이 자국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상대방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는 것만 생각하는 ‘덤 앤 더머’와 같은 방식으로 맞붙으면 양국 모두 손해 보는 것은 뻔하다.”

-장기화되면 어떤 피해를 볼 수 있나.

“해외 수요 기업들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빠르게 대체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통신장비 사업을 예로 들자면, 통신사들은 이미 삼성전자와 노키아, 화웨이 제품을 동시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가장 안정적 공급처였던 한국, 일본 회사에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나라 장비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한일 기업이 정체돼 있는 동안 다른 나라의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다.”

-일본이 취할 다음 보복조치는 어떤 것일까.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사업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일본의 규제ㆍ사법당국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기업이 일본에서 사고라도 내면, 과도한 책임을 물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응 방안으로 WTO 제소 카드가 거론된다.

“WTO 제소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본이 협정 위반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제소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린다는 측면에서다. 우리가 제소 움직임을 보이면 일본은 추가 조치를 하기에 부담스러워진다. 예방 효과가 분명히 있다.”

-WTO 제소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인가.

“소송 전략 차원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는 일본이 직접 수출 금지가 아니라 수출 절차를 복잡하게 해 놓은 수준이라 협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등의 중재 가능성은 없나.

“제 3국은 우리가 왜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는지, 우리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여길 수 있다. 일본이 한일청구권 협정 3조에 따라 중재를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우군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제 3국에 우리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아닌 나라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일을 키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안덕근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제학과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제통상 전문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과 무역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포럼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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