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만에 다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화ㆍ협상의 여지를 넓혔지만, 일본은 여전히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라는 요구만을 반복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도발을 감행하면서 우리의 안보 관련 정책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든 만큼 우리 정부로서도 그간 신중하게 접근해 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카드의 실제 활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과의 양자회담 직후 굳은 표정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에 대한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강 장관은 우리 정부의 대화ㆍ협상 의지를 전한 뒤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의 전격적인 수출규제와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이의 철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고노 외무장관은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임을 거듭 주장하며 우리 정부가 먼저 시정해야 한다고 고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어느 정도는 양국 관계 복원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었다. 지난달 초 전격적으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던 일본은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강행하면서도 추가적인 규제는 미뤘다. 특히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다소 높은 수위의 대일 메시지가 나올 것이란 일각의 예상과 달리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일본 측의 회담 태도는 일방적인 경제 보복을 자행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경제 도발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를 훼손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경고해 왔다. 오는 24일까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할 지소미아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한 것은 일본에 최소한의 관계 개선 의지를 촉구하는 의미가 있었다. 일본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은 만큼 지소미아 카드 활용은 불가피해졌다고 본다. 폐기 주장과 함께 정치ㆍ외교적 부담을 감안해 연장하더라도 정보 교류를 제한하자는 의견도 많다. 우리 정부가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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