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파테크’ 이경황 대표
“전세계 3억명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을 1% 낮추는 게 목표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라고 모두 점자를 읽고 쓰고 가르칠 수 있을까. 국내를 포함해 전세계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은 95%라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10명 중 1명 정도만 점자를 읽고 쓸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점자를 가르칠 수 있는 점자 교육 교사도 현저히 부족해 세계는 점자 문맹의 위기에 놓여 있다. 글만 알아도 삶의 질이 달라지는 데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이 점자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모른다는 게 상상이나 되는가.
점자 문맹률을 단 1%라도 낮추고자 점자학습기를 개발한 사회적기업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점자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점자학습기 ‘탭틸로’를 개발한 ‘오파테크’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는 “점자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시각장애인들이 많다”며 “탭틸로는 점자를 배우는 초기에 교사 도움 없이 시각장애인 스스로 읽고 연습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먼저 점자학습기 크기에 변화를 줬다. ‘교사 없이는 점자를 배울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한, 편견을 깬 도전이었다. 탭틸로는 마치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쓰던 건반악기 ‘멜로디언’과 비슷하게 생겼다. 사용자는 하얀 건반처럼 생긴 점자 출력부를 통해 손으로 점자를 읽을 수 있다. 그 다음 윗부분에 장착된 파란색 블록을 통해 읽은 점자를 입력하도록 돼 있다. 이 블록은 따로 떼어낼 수 있어 휴대가 가능해 어디서든지 연습할 수 있다.
탭틸로는 블루투스를 통해 모바일 앱과 연결해 점자를 배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모바일 앱은 누구든지 무료로 제공받아 독학할 수 있도록 했다. 앱을 통한 학습은 무척 흥미롭다. 앱에서 단어를 선택하면 탭틸로의 하얀 부분에 점자가 표기된다. 사용자는 그 점자를 손으로 읽고 파란 블록에 입력한다. 이때 잘못 입력하면 “한번만 더 해보죠”, 맞히면 “정답입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와 마치 게임 하듯 재미있다. 처음 점자를 접하고 공부하려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탭틸로는 점자 이외에 음악이나 수학, 외국어 학습도 가능하다. 특히 이 대표는 음악을 좋아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노래를 배우고,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콘텐츠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기존 점자학습기에는 음악이 없다”며 “탭틸로를 통해 점자를 가르치는 교사들로부터 음악이 교육에 상당히 유익하다는 피드백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콘텐츠를 늘려가면서 언어도 확장할 계획이다.
언어의 확장은 탭틸로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이 대표는 영어뿐만 아니라 독일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등 유럽 지역 언어을 비롯해 아랍어까지 가능한 점자 학습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그는 2016년부터 ‘세계보조공학박람회’ 등을 돌며 탭틸로를 소개하고 있는데 각국 바이어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독일에서 열린 전시회에선 한 포르투갈 바이어가 찾아와 “굉장히 오랫동안 탭틸로 같은 제품을 찾았는데 왜 이제 왔느냐”며 반가워했다고 전했다. 이 바이어는 다른 나라 바이어들까지 데려와 탭틸로를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까지 해줬다고 한다. 점자학습기 크기가 남달랐을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을 이용해 음성 지원 서비스가 제공되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탭틸로와의 협업을 제안하고 있다. 북유럽에는 세계 1, 2위의 점자프린터 업체들이 있는데 탭틸로와 패키지 제품을 기획하고 싶다는 것이다. 프린터가 많이 팔리려면 점자를 쓰는 인구가 많아져야 하는데 학습 도구로서 탭틸로가 제격이라 평가한 것이다.
오파테크는 현재 미국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탭틸로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준 덕분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지난 2017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보조공학박람회’에 참가해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이 대표는 시각장애아를 둔 부모와 점자를 가르치는 교사 등을 대상으로 개인 고객들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실패의 쓴맛을 봤다.
“개인 고객들의 수요가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게 실수였습니다. 미국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거죠. 교육용 기기라서 일반 소비재처럼 사려고 하질 않더라고요. 결국 한 대도 못 팔았어요.”
미국에서 교육은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B2C가 아닌 B2B로 접근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탭틸로를 미국 시장에 알리는데 성공했고, 미국 내 법인회사를 세우는 계획까지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이 대표는 국내에선 판매보다는 보급사업을 해보고 싶단다. 최근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오파테크는 SK텔레콤과 손잡고 전국 맹학교와 복지관 등에 탭틸로 110대를 공급하기로 했다. 탭틸로가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스피커 ‘누구’와 만나 점자 학습의 문턱을 낮추게 된 것이다. “이제 탭틸로가 전세계 점자학습기의 표준이 되는 날을 꿈꾸고 있어요.” 이 대표의 또 다른 목표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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