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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 칼럼] 위기는 곧 기회다!

입력
2019.08.25 09:00
수정
2019.08.25 18: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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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가함으로써 일본과의 갈등에서 안전한 길 보다는 명분과 자존을 택했다. 거의 올인 베팅을 한 셈이다. 올인 베팅에서 이기려면 궁극적으로 우리 패가 강해야 하고, 지금 강하지 않으면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성패는 말이 아닌 디테일의 실천에 있다. 류효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가함으로써 일본과의 갈등에서 안전한 길 보다는 명분과 자존을 택했다. 거의 올인 베팅을 한 셈이다. 올인 베팅에서 이기려면 궁극적으로 우리 패가 강해야 하고, 지금 강하지 않으면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성패는 말이 아닌 디테일의 실천에 있다. 류효진 기자

대한민국엔 막연하게 통하는 믿음이 있었다. 일본은 36년 식민 지배에 대한 죄과로 우리에게 한 수 접어준다, 사회주의 중국은 19세기 열강의 침탈을 겪었기에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6‧25 전쟁을 치른 혈맹이기 때문에 위기 때 우리 편에 설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 유지를 위해 보유할 뿐이지 남한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등등.

미국은 언제나 우리 편, 일본은 한 수 접어준다는 믿음 무너져

상당히 오랫동안 유효했던 이런 믿음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정없이 무너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인 우리는 최근 아베 정권의 거친 역공을 받고 있고, 몇 년 전 여론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우호적 응답이 60%나 됐으나 시진핑의 사드 보복을 겪으면서 중국을 친구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가장 강고한 믿음인 ‘영원한 한미 동맹’도 흔들리고 있다. 아베의 도발로 촉발된 한일 분쟁에서 미국이 중립을 취함으로써 사실상 일본 편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5조 원으로 증액하라고 일방적으로 압박하자 미국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과 연관된 믿음의 붕괴는 그만큼 국제정치 환경이 척박해졌다는 의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막연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을 깨닫고 우리 스스로를 정비할 기회가 됐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북한 핵을 둘러싼 가설은 어떨까.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사회주의 경제부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고 믿고, 또 믿고 싶어 하는 듯하다. 거기에는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자신도 절멸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상식적 판단이 있고, 미국을 향한 도발도 결국 체제 안전과 보장을 얻어내기 위한 제한적 수단이라는 분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가설, 이 믿음도 무너지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에 그토록 정성을 기울이는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 할 노릇’ 이라는 식의 듣도 보도 못한 욕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는데, 문 대통령은 침묵했고 청와대, 통일부도 그랬다. 판을 깨지 않으려는 전략적 인내라고 하지만,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핵무기는 투하하거나 발사하는 직접적 사용도 있지만, 보유 자체로 상대에 엄청난 압박을 가하는 정치적 사용의 측면도 있다. 북한은 이미 정치적 사용을 하고 있고,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볼모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 한일 대립 격화, 미국 부정적 기류…위기감 팽배

상황이 이러니 다들 걱정이다. 더욱이 지난 22일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선언, 정면 대결을 택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지소미아 종결은 간접적으로 미국을 향한 불만의 표출로 비칠 수도 있어 한미 동맹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 내부의 분열은 극심해지고 경제 활력은 둔화되고 기업들의 의욕은 낮아지는 상황에서 외부적 충격까지 가해지면 나라가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기적을 만들어왔다. 산업화 민주화를 단시일에 이뤄냈고 1998년 외환위기를 단합된 힘으로 극복한 바 있다. ‘사고를 딛고 일어선 나라’라는 비유가 있듯이 우리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사건을 계기로 감리를 강화, 건설 분야가 업그레이드됐고, 우지(牛脂) 파동 후 식품안전 수준이 높아졌으며 페놀사건을 계기로 환경보호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큰 위기가 닥치면 거꾸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개선이나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극복해왔다.

위기 극복하며 커온 나라… 정부, 말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해야

어찌 보면 정치 무능, 노사 갈등, 기업 적대시 문화, 대기업과 사주 일가의 갑질, 생산성 저하 등으로 나라 전체가 느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도발이라는 외부적 충격이 우리를 각성시키고 구두끈을 질끈 매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 그런 징후가 보인다. 대기업들은 실력있는 중소기업들의 기술력을 흡수하려고만 하던 구태에서 상생구조를 만들려 애쓰고 있다. 각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다. 정부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조선조 말 제국주의 침탈에 유교적 도덕주의만으로는 견딜 수 없었던 역사가 말만으로는 국난을 극복할 수 없음을 웅변해준다. 정부의 실력이란 무엇인가. 디테일에서 일이 돌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정부 핵심 인사들은 입만 열면 중소기업 육성, 기초기술 육성,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외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공염불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하면 감사원 감사를 받는다며 움직이지 않는 공직사회, 민원서류를 이런저런 규정을 내세워 한없이 붙들고 있는 공무원, 대기업보다 더한 갑질을 하고 있는 공기업들, 이런 문제점들을 제대로 모르고 그냥 왔다가는 장관들이 있는 한 위기는 기회가 되지 못하고 망조로 이어질 수 있다.

각오를 했으면 더 분발하고, 더 들여다보고, 더 들어보자.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해결해주고, 풀어줄 수 있는 일은 풀어주고, 뒷받침해줄 일은 뒷받침해주자. 문재인 정부는 지금 기로에 섰다. 안전한 길을 버리고 명분과 자존을 택했다. 거의 올인 베팅을 한 셈이다. 올인 베팅에서 이기려면 궁극적으로 우리 패가 강해야 하고, 지금 강하지 않으면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성패는 말이 아닌 디테일의 실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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