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명소인데 영화 흔적 지워질까봐 철거 방안 고민
독립영화 ‘워낭소리’ 촬영지가 화재로 불탄 지 한 달이 넘도록 방치되고 있다.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 워낭소리 촬영지는 영화 개봉 후 관광명소가 됐으나 이날 불로 화상을 입은 큰아들 최영두(64)씨도 치료를 하느라 철거시기를 놓쳤고, 지자체 지원대상도 아니어서 대책마련이 늦어지고 있다. 특히 이날 화재는 워낭소리 마지막 주인공인 이삼순(82)씨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6일 봉화군 등에 따르면 2009년 개봉해 관람객 300만명을 돌파한 워낭소리의 촬영지는 지난달 12일 오후 8시10분쯤 화재가 발생해 목조주택 58.66㎡와 컨테이너 2동 등 100여㎡를 태웠다.
이날 화재로 영화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 내외가 쓰던 반닫이 장 6개와 액자 20여 개를 제외한 흔적은 모조리 불타버렸다. 화가인 최영두씨의 그림도 불에 탔고, 마당에 있던 장승도 절반은 숯 더미로 변했다.
화재 때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창고에서 생활하고 있는 큰아들은 대한적십자사와 가족 등이 가져다 준 이불과 식기, 텔레비전 등으로 구색을 갖췄지만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생활이 한 달 반이 지나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불탄 집은 철거됐지만 컨테이너 2동은 여전히 그을린 냄새를 풍긴 채 남아있다. 최씨는 “화재 당시 불을 끄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고 2주간 통원치료를 다니느라 철거 시기도 놓쳤다”며 “관광명소인데 아무 대책 없이 철거하면 워낭소리의 흔적을 다 지워내는 것 같아 차선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봉화은어축제 등 행사 때 관광객이 많이 찾기는 하지만 개인 집이다 보니 무작정 도와달라는 것도 어렵고 더위와 태풍도 겹쳐 철거도 미뤄졌다”며 “6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짐 정리도 못한 채 큰불이 나 망연자실했다”고 말했다.
최씨에 따르면 건축가와 후배 등이 불탄 집을 테마공원으로 만들어 워낭소리의 흔적을 보존할 계획이다. 최씨는 “이 집에서 500여m 떨어진 도로변에는 워낭소리공원이 있고 봉화은어축제 등 지역 행사 시기에는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어 테마공원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봉화군도 화재 폐기물 처리 등 지원방안을 고심 중이다.
한편 영화 주인공 최원균씨는 2013년 85세로 먼저 별세했고 이삼순씨도 6월18일 숨져 나란히 워낭소리공원에 묻혔다. 부부는 50여년전 봉화읍 거촌리에서 이곳으로 이사와 8남매를 키웠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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