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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저팬ㆍ차이나 머니 몰려드는데… “한국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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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저팬ㆍ차이나 머니 몰려드는데… “한국이 안 보인다”

입력
2019.08.28 16:39
수정
2019.08.28 22:2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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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경제회랑’ 현장을 가다]

미래산업 거점ㆍ물류허브 특구 개발… 中ㆍ日, 車ㆍ인프라 사업 등 진출

신남방정책 한국, 태국 투자 미미… 태국 측 “사물인터넷 등 협력을”

지난 19일 태국 수도 방콕의 동부경제회랑(EEC) 사무소에서 히란 루찌라위롯 EEC 부상무이사가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태국 정부가 추진 중인 EEC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새로운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12개 핵심 미래산업 분야를 키운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주한태국대사관제공
지난 19일 태국 수도 방콕의 동부경제회랑(EEC) 사무소에서 히란 루찌라위롯 EEC 부상무이사가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태국 정부가 추진 중인 EEC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새로운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12개 핵심 미래산업 분야를 키운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주한태국대사관제공

“한국이 없다(Korea is absent).”

지난 19일 태국 수도 방콕의 동부경제회랑(EECㆍEastern Economic Corridor) 사무소에서 만난 히란 루찌라위롯 EEC 부상무이사는 이 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태국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EEC 프로젝트에서 일본ㆍ중국과 달리 한국의 투자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태국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거점으로 삼을 만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중심국이지만, 베트남 등 주변국에 비해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시들한 편이다.

우리에게는 관광국가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태국은 올해 아세안 의장국이자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가진 역내 경제 규모 2위 국가다. 특히 지난 6월 총선을 통한 민정이양으로 정치적 안정을 찾은 태국 정부는 ‘태국 4.0’ 정책에 본격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기지 역할에서 벗어나, 인프라와 자체 기술력을 발전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한다는 비전이다. 그 중에서도 동부해안 지역의 경제특구 ‘EEC’는 태국 4.0의 핵심 고리다.

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부경제회랑(EEC)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라용에서 건설되고 있는 혁신단지 EECi(이노베이션) 특구를 지난 20일 찾았다. 아직 건설 공사 초기 단계로 태국 국영 최대 에너지 기업인 PTT의 연구단지인 왕찬삼림연구소와 과학기술연구전문대학원 VISTEC 등이 이곳에 속한다. 라용=최나실 기자
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부경제회랑(EEC)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라용에서 건설되고 있는 혁신단지 EECi(이노베이션) 특구를 지난 20일 찾았다. 아직 건설 공사 초기 단계로 태국 국영 최대 에너지 기업인 PTT의 연구단지인 왕찬삼림연구소와 과학기술연구전문대학원 VISTEC 등이 이곳에 속한다. 라용=최나실 기자

EEC 프로젝트는 1980년대부터 형성돼 온 제조업 수출산업단지인 ‘이스턴 시보드’ 지역의 라용·촌부리·차층사오 3개주(州)를 업그레이드시켜 차세대 자동차 등 12개 핵심 미래산업 분야의 거점 단지로 삼는다는 비전 아래 진행되고 있다. 고속철도ㆍ항구ㆍ공항 등 광범위한 교통 인프라 정비로 EEC 지역을 메콩강 유역의 남부경제회랑(SECㆍ미얀마~태국~캄보디아~베트남)과 남북경제회랑(NSECㆍ태국~라오스~중국)을 잇는 동남아 물류 허브로 만든다는 게 태국 정부 구상이다. 또 과학기술연구전문대학원 ‘VISTEC’에서 고급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등 국가 기술 발전을 위한 ‘소프트웨어’도 동시에 키운다.

한국이 비교적 태국에 무심했던 사이, 일본과 중국은 오래 전부터 태국 경제에 스며들었다. 대표 사례로 이미 1950년대부터 태국에 진출한 일본 완성차 기업들은 사실상 시장을 독점해, 현지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한다. 최근 태국 정부가 각종 인센티브로 장려하고 있는 전기차ㆍ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도 일본 기업들은 적극 투자에 나서고 있다. 혼다, 도요타 등이 미래차 배터리를 태국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후발주자인 중국도 무서운 속도로 따라 붙고 있다. 중국 최대 자동차 기업인 상하이자동차그룹(SAIC)이 지난 2017년 촌부리에 공장을 세웠고, 알리바바도 지난해 4월 EEC 지역 내 100억바트(약 3,966억원) 규모의 대규모 물류센터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게다가 EEC 개발로 인프라 건설 수요가 폭증하자, 중일이 손을 잡고 태국 인프라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양국은 지난해 10월 열린 ‘중·일 제3국 시장 협력 포럼’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 태국의 EEC 내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시작으로 인프라 협력 방안을 논의해가기로 합의했다.

지난 21일 태국 촌부리주 시라차에 위치한 한국 중소기업 ‘사우스 스타’ 공장에서 태국 현지 노동자들이 냉장고 냉매용 파이프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약 30년 전인 1988년 태국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 생산법인을 설립했는데, 사우스 스타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가전부문 글로벌 기업들에 냉장고와 에어컨 부품 등을 납품하고 있다. 촌부리=최나실 기자
지난 21일 태국 촌부리주 시라차에 위치한 한국 중소기업 ‘사우스 스타’ 공장에서 태국 현지 노동자들이 냉장고 냉매용 파이프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약 30년 전인 1988년 태국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 생산법인을 설립했는데, 사우스 스타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가전부문 글로벌 기업들에 냉장고와 에어컨 부품 등을 납품하고 있다. 촌부리=최나실 기자

반면 한국은 존재감이 시들하다. 1990년대 전후 진출한 삼성ㆍLG 가전 공장과 포스코를 제외하고는 이후 눈에 띄는 대규모 투자가 없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는 400개 내외로 아세안 3위지만, 4,200여개 기업이 진출해있는 1위 베트남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초라한 수준이다. 해외직접투자(FDI) 누적액 규모로 따지면 태국은 베트남(5위), 인도네시아(10위), 필리핀(21위)에 이어 캄보디아(25위)에도 한참 못 미치는 30위로 밀려난다.

그간 한국 기업 진출이 부진했던 이유로는 태국이 중진국으로 성장하면서 현지 임금 수준이 많이 올랐다는 점이 꼽힌다. 이와 관련 태국 3대 은행인 까시콘 뱅크의 길태준 글로벌 사업팀 팀장은 “과거에는 주로 값싼 인건비를 보고 투자하는 제조업 기반 회사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태국과 주변 동남아 국가들을 ‘마켓’으로 보고 들어오는 기업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지리상 태국은 ‘포스트 차이나’라고 불리며 7%대의 연간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CLMV(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태국의 핵심투자지역 동부경제회랑. 그래픽=송정근 기자
태국의 핵심투자지역 동부경제회랑. 그래픽=송정근 기자

동남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서 매력 있는 태국이지만, 자체 기술과 고급 전문 인력 부족은 극복해 가야 할 지점이다. 태국 정부가 각종 지원 정책을 통해 기술 유치와 해외 고급 인력 수급에 힘쓰는 이유다. 태국투자청(BOI)에 따르면 바이오ㆍ디지털 등 핵심 미래산업군에 속하는 기업이 EEC 내에서 기술 개발에 참여할 경우 최대 13년까지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또한 EEC 내에서는 해외 기업의 토지 임대 기간이 최장 99년까지 인정되고, 해외 전문 인력과 경영인들에 대해 기존 35%까지 적용됐던 개인소득세율은 15~17%로 제한된다.

이에 중일은 EEC에서도 앞다퉈 투자 경쟁에 나서고 있다. BOI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BOI에서 승인한 프로젝트의 누적투자액 규모로 따질 때 일본(2위ㆍ4조 1,157억원)과 중국(3위ㆍ2조 2,144억원)은 한국(10위ㆍ2,538억원)의 각각 16배, 8배 수준이다. EEC 내 자국 기업들의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일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EEC 연계를 구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존재감이 없다시피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보다 적극적인 태국과의 경제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까시콘 뱅크 산하 연구기관인 까시콘 리서치센터의 아피난 리라차오 선임연구원은 “사물인터넷(IoT)과 반도체, 산업 자동화 등 한국이 밀고 있는 산업과 태국이 발전시키고자 하는 산업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다음 달 아세안 순방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3일 태국을 공식 방문한다.

방콕ㆍ촌부리ㆍ라용(태국)=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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