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겼다. 직접 고용 시행하라.”
29일 오전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모인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 해고노동자 400여명(주최 측 추산)이 환호성을 질렀다. 6년 동안 이어온 소송 끝에 대법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고, 서로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충남 예산 톨게이트에서 근무하다 지난 6월에 해고됐던 홍재선(48)씨는 이날 최종 선고 소식을 듣고 “해고 이후 길바닥에서 (농성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감개 무량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ㆍ노정희 대법관)는 이날 한국도로공사의 용역업체 소속이었다가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68명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도로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1일 해고된 요금수납원 1,500여명 중 일부가 일터로 복귀할 길이 열렸다.
용역업체 소속이었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2013년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이들은 도로공사(원청)가 용역업체(하청) 소속인 요금수납원의 모든 업무처리과정을 관리ㆍ감독했으므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ㆍ2심 재판부 모두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도로공사 측은 “용역업체가 독자적으로 노동자를 채용하는 등 독자적 조직 체계를 갖고 있다”며 파견관계가 아니라고 맞섰다. 파견법은 2년 이상 원청의 지휘ㆍ감독을 받으면 하청노동자를 원청이 직접고용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17년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갈등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9월 통행료 수납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하고 기존 용역회사 소속 요금수납원을 모두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로 했다.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하도록 한 2심 판결까지 나온 상황이라 전체 6,500명 중 1,500명은 자회사 소속으로의 전환을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1일 이들 1,500명은 해고됐고 나머지 5,000명은 자회사로 일터를 옮겼다. 이날 승소한 수납원 368명 이외의 다른 1,200명의 해고 노동자 중 상당수는 다른 법원에서 1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다.
노동계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해고노동자들 역시 승소한 노동자와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에 따라 도로공사가 해고노동자 전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로공사 측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은데다 승소한 노동자들은 복귀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수납업무를 맡지 못할 수도 있다. 도로공사가 수납업무를 이미 자회사에 넘긴 만큼 복귀자들을 도로공사 내 다른 부서로 배치해 다른 업무를 맡길 가능성이 높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이날 “업무 배치는 당사자들과 협의를 거쳐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로공사는 다음달 3일 후속 조치를 발표할 계획이다.
전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의 10여m 높이의 구조물 위에서 61일째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 27명은 이날 대법원 선고에도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고공농성 중인 한종숙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 총무부장은 “비정규직 노동 역사에 큰 획은 그은 판결 소식에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면서도 “남은 1,200명의 동료들을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톨게이트 노조는 1,500명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30일과 31일 각각 청와대와 종로타워 앞에서 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문제해결방식이 자회사 정규직화 과정에서 노노ㆍ노사 갈등을 빚고 있는 다른 공공기관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봤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자회사로 전환하는 정규직화 방식이 남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갈등 해소를 위한 전환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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