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1일 방글라데시 샤 포리르 드윕 해변에서 한 로힝야 난민 여성이 서 있기조차 어려운 듯, 무릎을 꿇은 채 손을 짚고 엎드려 있다. 미얀마 정부군의 로힝야족 학살을 피해서 작은 목선을 타고 이곳에 도착한 직후 모습으로, 탄압과 박해에 시달리는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미얀마군은 로힝야 여성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전시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나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샤 포리르 드윕=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4월 2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시 성폭력 관련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남성 및 소년에 대한 전시 성폭력과 강간도 ‘전쟁 범죄’임을 인정한다”는 결의안 2475호였다. 전쟁 기간이나 분쟁 이후 상황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피해 그룹이 여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이런 주장은 그동안 부분적으로 제기됐다. 전시 성폭력과 관련, “분쟁 지역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겨냥한 전쟁 도구”라는 포괄적 접근을 일부 연구자들이 취해 온 것이다. 물론 그런 취약층의 절대 다수가 여성과 어린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남성(소년 포함)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 그룹도 고문을 동반한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21세기 분쟁 지대의 현실이다. 결의안 2475호는 피해자 그룹을 한층 더 넓게 규정했다는 점에서, 전시 성폭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지난 22일 유엔 독립 국제진상조사단(이하 조사단)이 발표한 미얀마 성폭력 보고서는 ‘피해자 확장론’을 잘 반영했다고 볼 만하다. 조사단은 로힝야족 제노사이드(대량 학살)를 중점 조사하면서 카친ㆍ샨ㆍ라카인 등 미얀마의 다른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발생한 범죄도 조사해 왔다. 지난해 9월 18일 발표된 1차 보고서가 미얀마의 전쟁 범죄 전반을 촘촘히 담았다면, 이번 2차 보고서는 전시 강간ㆍ성폭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로힝야 남성과 소년, 트랜스젠더 등 그동안 좀처럼 거론되지 않았던 성폭력 피해 그룹들에 대해서도 조명한 것이다.

미얀마 ‘로힝야족 학살 사태 및 대탈출’ 2주년을 맞아 25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 캠프에서 로힝야 난민들이 대형 포스터를 내걸고 기념식을 열고 있다. 콕스바자르=AFP 연합뉴스

보고서에 담긴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17년 8월 25일 미얀마군이 서부 라카인주(州)에서 ‘청소 작전(clearance op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로힝야 대학살을 시작하자, 그 현장을 탈출하던 한 로힝야 트랜스젠더 여성은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톰부루 탈라 언덕에서 정부군에 붙잡혀 집단 강간을 당했다. 또 라카인주 마웅도 타운십의 한 경찰서에선 18세 로힝야 트랜스젠더 여성이 거의 매주 불려 가 항문성교와 구강성교 등을 강요받았다. 경찰의 요구를 거부하면 가차 없는 구타가 이어졌다. 특정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성폭력이 벌어진 이런 경우는 전시 성폭력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성노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성적 노예로 가두는’ 행위를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소수민족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던 정부군의 만행은 중국과 국경을 맞댄 북부 카친주에서 그 이전부터 종종 목격돼 왔다. 2012년 카친주 바모 타운십에서 정부군에 납치된 카친 여성이 군 간부의 텐트로 불려 가 강간당한 건 대표적 사례다. 유엔 보고서는 문제의 텐트에 대해 “소수민족 여성들이 5~7일씩 갇혀 성노예로 착취당한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저항했던 카친 여성에게 돌아온 건 담배ㆍ총ㆍ칼 등에 의한 신체 훼손, 그리고 의식을 잃을 정도의 구타였다.

2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로힝야 학살 2년 기자간담회’ 도중 라히마 베검(맨 왼쪽) ‘쉼없는 존재’ 공동창립자가 로힝야족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얀마는 아시아의 여러 분쟁 지역 중에서도 온갖 유형의 전시 성폭력이 수십 년간 지속된 가장 악랄한 전쟁 범죄 국가다. 지난 23, 24일 서울 서강대에서 열린 ‘로힝야 피해 생존자 보호와 학살 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의 부제가 ‘집단 학살 무기로서의 성폭력’이었고, 여기서 미얀마 사례가 집중 논의된 것도 그런 배경에 기인한다. 발표자로 나선 샨여성네트워크(SWAN)의 생 넝에 따르면, 2003~2004년 소수민족 여성들을 강간한 범인들 다수는 군 간부급이다. 2002년 발간된 샨족 여성들의 전시 성폭력 보고서인 ‘강간 라이선스(License to Rape)’는 1996~2001년 발생한 사례 173건을 다뤘다. 이 중 80%가 군 간부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게 SWAN의 분석이다. 2004년 카렌여성기구(KWO)가 발표한 ‘침묵을 깨뜨리며(Shattering Silence)’ 보고서에서도 사례 125건 중 절반 이상은 군 간부가 가해자였다. 소수민족 여성을 겨냥한 미얀마군의 성폭력은 전장에 나간 일부 병사의 즉각적이고 우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층부 정책 라인을 따라 자행됐다는 걸 유추케 하는 대목이다. 카렌주 최대 반군조직 카렌민족연합(KNU) 자문위원이자 여성운동가인 노우 메이 우 무트로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에서 강간은 2016년 시작된 게 아니다. 1949년 카렌 지역에서 혁명이 시작될 때 버마군은 랑군의 카렌 여성들을 집에까지 쳐 들어가 강간했다. 미얀마 역사가 그렇게 시작됐다.”

전시 성폭력이 ‘정책’에 의해 좌우된다는 건 이번 유엔 보고서가 밝힌 일부 사례에서도 드러났다. 예컨대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고조된 아라칸군(라카인족 반군)과 미얀마 정부군 간의 교전 무대인 라카인주에서 정부군에 납치된 라카인 여성들이 집단 강간을 당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라카인 여성들이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라카인주의 또 다른 커뮤니티인 로힝야 여성들에 대한 정부군의 대대적인 집단 강간과 견주어 보면 극히 드물다. 게다가 두 커뮤니티를 겨냥해 배치된 군 부대가 동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라카인주의 강간은 정부군 의도와 정책으로 통제 가능했던 게 아니냐는 게 유엔 보고서의 분석이다.

22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한 여성이 아이들을 데리고 걸어가고 있다. 콕스바자르=AP 연합뉴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무장단체와 성폭력’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우드 예일대 교수(정치학)는 ‘전시 성폭력은 분쟁 현장 어디서든 벌어지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통상적 인식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예일대 맥밀란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관련 연구를 통해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있다며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무장조직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전쟁 당사자 누구도 성폭력에 가담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이런 무장조직의 특징을 △많은 자원을 자기 조직 대원들에게 투자해 민간인을 존중하도록 철저히 교육하는 ‘사회화’ △성폭력ㆍ강간을 철저히 금지하는 효율적 감시 체계의 존재 등 두 가지로 요약했다. 이를 충족하는 조직으로 엘리자베스 교수는 스리랑카 타밀 타이거 반군을 지목하기도 했다.

결국 “무장 군인(정부군이든 반군이든)의 성폭력은 정책적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시 성폭력은 전쟁 당사자의 ‘의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도구화될 수도, 반대로 부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시 강간이 ‘제노사이드 범죄’로 규정된 건 바로 그런 의도와 맞물려 있다. 제노사이드의 핵심 요건은 특정 종족이나 종교 그룹을 부분 또는 전부 파괴하겠다는 의도(intent)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족 파괴 의도가 강간과 결합된 가장 적나라한 사례는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다. 당시 후투족 정부는 HIV(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인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ㆍ에이즈) 환자, 감옥에 수감 중이던 범죄자 등을 이른바 ‘강간 부대’로 조직화한 뒤, 투치족 여성들을 상대로 무차별 성폭행을 가하도록 했다. 지난 4월 르완다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 당시 투치족 여성 약 25만명이 후투족 정부군과 민병대에 의해 강간당했다. 그리고 피해 여성 4명 중 한 명은 HIV 또는 에이즈에 감염됐다. 세계적 의학 저널인 랜싯(Lancet)의 2002년 12월 기고문을 보면, 르완다 제노사이드 이후 강간에 따른 임신으로 출생한 아이는 2,000~5,000명가량이다. 전시 강간과 에이즈, 이 두 가지가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핵심 도구였던 셈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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