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이후로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당장 소재 수급에 차질을 겪게 된 기업들부터 동분서주하며 원료를 확보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정부도 다양한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 국민들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성숙한 자세로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이번 위기를 기화로 애꿎은 화학규제에 비난이 쏠리고 있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등 과도한 안전규제로 인해 불화수소와 같은 핵심소재 산업의 성장이 지체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안전기준이 413개로 크게 증가하여 공장 신설이 어려워졌고, 손발이 묶인 기업들이 소재 개발을 외면하는 바람에 이번 수출규제 위기가 가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화학법령은 유럽 및 선진국의 제품 제조과정에서의 환경무역장벽인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대형 화학사고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오랜 기간 국민적 합의를 거쳐 체계를 갖추고 시행되었다. 이후 화학공장은 꾸준히 늘어왔다. 환경부에 따르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영업자는 2014년 대비 78%나 증가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반도체, 석유화학, 정밀화학 등 주요 화학물질 제조‧사용업의 생산지수도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하였다. 정말로 화학법령이 기업의 손발을 묶었다면 관련 산업이 이렇게 호황을 누릴 수가 없다.
게다가, 기체상 불화수소와 똑같은 법적 규제를 받고 있는 액체상 불산은 이미 국산화가 진행되었으며 국내에서 연간 15만톤이 생산되고 있다. 과도한 안전기준이 문제가 되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고압가스관리법, 위험물안전관리법 등 우리 사회는 위험한 물질에 대해 이미 수백 개의 안전기준을 두고 관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관련 산업이 지체되거나 퇴출되지는 않는다. 안전을 지켜가면서 수익을 내고 안전을 지켜가면서 생산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안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차례 대규모 화학사고 이후, 화학시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만연하게 되었고 이는 신규 공장 건설 시 주민 반대와 민원에 부닥치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2012년 구미 불산사고 직후, 한 불산 제조기업이 광양에 투자 신청을 하였으나 지역 안전을 염려한 주민 반대로 인해 이를 철회한 바 있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화학시설에 대한 안전관리를 철저히 투명하게 하여, 화학시설이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게 하면 될 일이다. 실제로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경우 화학시설의 안전관리와 유해물질 배출 현황을 지역사회에 주기적으로 공개하여 이해관계자들 간 빈틈없는 협치를 실천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 화학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화학법령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화학사고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등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도 화학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걱정과 불안은 여전하다. 최근 서산 한 화학기업에서의 유출사고처럼 한순간의 작업실수가 대규모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많은 사고와 교훈을 거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화학물질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이루어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처럼 일시적인 위기로 그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상황은 피해야 할 것이다. 안전 불안, 지역 민원으로 인해 화학시설의 건립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안전 규제를 풀면 마치 모든 게 해결될 듯 주장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극복하고자 하는 지금 화학물질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적 지지의 큰 동력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김상돈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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