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사놨다” 협박도 받아…
시민에 계곡 돌려준 남양주시
1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 계곡.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서울 근교 4대 명산의 풍광을 즐기려는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점심 때가 다가오자 가족, 친구들이 삼삼오오 계곡 옆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식히는 등산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비슷한 시각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 계곡을 찾은 시민들도 계곡 옆에 앉아 쉬고 있었다. 탁 트인 자연 경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음식점들이 독차지한 물가 자리에 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7만원에 달하는 닭백숙 등은 주문해야 하는 일도 없어졌다.
김모(52)씨는 “예전에는 주차비에 비싼 음식 값까지 지불해야 해 부담되고 불쾌했는데 지금은 자유롭게 계곡을 드나들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만족해했다.
남양주시의 계곡 풍경이 확 바뀌었다. 시가 올해 계곡과 하천 주변에 어지럽게 설치돼 있던 물가 자리 평상과 좌대 등 불법 시설물을 모두 정비하면서 계곡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가 1년 가까이 뚝심 있게 밀어붙인 ‘하천 정원화’ 사업 덕분이다. 이 사업은 지난해 7월 취임한 조광한 시장이 음식점들에게 빼앗긴 계곡과 하천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기로 약속하면서 추진됐다. 조 시장은 지난해 9월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공무원들과 함께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올해 휴가철을 앞둔 6월 청학천(수락산계곡), 팔현천(은항아리 계곡), 월문천(묘적사계곡), 구운천(수동계곡) 등 남양주 4대 하천과 계곡에선 불법 시설물이 싹 사라졌다.
시는 이 기간 82개 음식점들이 설치한 물가 자리 평상, 좌대, 그늘 천막, 보 등의 불법 시설물 1,105개를 말끔하게 철거했다. 식당에서 물길을 막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구조물(수영장, 교량 등)까지 정비했다. 철거한 폐기물 양만 2,260톤에 달한다.
이후 계곡과 하천은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물 막이 시설과 거미줄처럼 설치된 그늘 천막을 들어내자 계곡물이 막힘 없이 흘러 내렸고, 경관도 좋아졌다. 목이 좋은 물가 자리는 시민들의 공간이 됐다. 7만∼8만원짜리 닭백숙 등의 요리를 주문해야 계곡물에 들어갈 수 있었던 불법 영업도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계곡을 드나들며 자연을 만끽했다. 계곡이 음식점들에게 점령당한 지 50여 년만의 일이다.
생계를 내세운 음식점들의 저항은 대단했다. 조 시장과 담당 공무원은 욕설은 물론 “방검복 입고 다녀라” “밤길 조심해라” “도끼 사뒀다” 등 협박성 발언까지 들어야 했다.
이런 난관 속에서도 ‘하천 정원화’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소통에 기반한다. 시는 음식점 업주들과 시설물 건축주, 토지주 등과 무려 20여 차례 간담회와 설명회 열고 불법 시설물 철거 필요성을 알렸다. 식장 주인과는 일대일 면담도 진행했다.
그 결과 불법 시설물 중 40% 가량은 업주 스스로 철거했다. 후속 조치에도 나섰다. 현장에 상시 감시원을 둬 불법 시설물이 다시는 계곡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
계곡과 하천을 시민들의 쉼터로 꾸미는 정원화 사업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용석만 남양주시 생태하천과장은 “향후 시민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쉬고 운동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편의 시설물을 설치해 시민공원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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