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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공원, 거리로… 클래식, 공연장을 뛰쳐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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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공원, 거리로… 클래식, 공연장을 뛰쳐나오다

입력
2019.09.02 04:40
수정
2019.09.02 10:34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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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한 정육점 옆에서 바리톤 박진현, 피아니스트 정다슬의 클래식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2017년 10월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한 정육점 옆에서 바리톤 박진현, 피아니스트 정다슬의 클래식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지난해 10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정육점 앞에 조그만 붉은 카펫이 깔렸다. 곧이어 진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소프라노 박미현이 그 위로 올라섰다. 장을 보던 시민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시선이 몰리자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성광의 연주로 박미현의 아리아가 시작됐다. 푸치니 오페라 ‘자니 스키키’ 속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양손에 시장 바구니를 든 아웃도어 복장의 어르신, 그 앞에 드레스 차림으로 아리아를 뽐내는 박미현이 대조되며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지난달 22일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 연남장.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식당으로 쓰였던 이곳 1층의 거대한 테이블이 별안간 두 젊은 연주자의 클래식 무대로 바뀌었다. 30명 남짓 청중에게 둘러싸인 채 힘차게 활을 켜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와 첼리스트 이호찬. 클래식 음향 장비가 없는 데다 연주자와 악기, 악보가 겨우 올라갈 만한 작은 무대였지만 이들이 연주하는 헨델, 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는 독특한 이 연주 공간을 꽉 채우며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연남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와 첼리스트 이호찬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연남장은 이날 낮까지만 해도 식당으로 쓰이던 곳이다. 연주자들이 올라 선 무대 역시 식당 테이블이다. 쌀롱드무지끄 제공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연남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와 첼리스트 이호찬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연남장은 이날 낮까지만 해도 식당으로 쓰이던 곳이다. 연주자들이 올라 선 무대 역시 식당 테이블이다. 쌀롱드무지끄 제공

클래식 음악의 무대와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클래식을 어렵고 무겁게 느끼는 청중을 위해 음악가들이 직접 다가가기 시작하면서다. 공연장의 음향 장비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연주자들이 공연장 밖 여러 실내 공간, 나아가 야외로도 나서며 클래식 무대가 공원과 시장, 거리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클래식 무대 형태는 2, 3년 전부터 부쩍 다양해졌다. 쟁쟁한 솔리스트들이 뭉쳐 앙상블을 꾸린 클럽M의 창단 무대가 대표적이다. 10명의 연주자들이 때로는 함께, 때로는 따로 그룹을 만들어 연주하는 클럽M은 2017년 마포구 홍익대 인근 거리에서 ‘클래식 버스킹’을 선보이며 활동을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김재원은 “클래식과 가장 먼 지역으로 상징되는 홍익대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클라리넷 등 합주를 했다”며 “저를 포함한 연주자들이 워낙 신났던 경험이라 기회가 된다면 버스킹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클래식 앙상블인 클럽M이 지난 2017년 5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클래식 버스킹'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클럽M 제공
클래식 앙상블인 클럽M이 지난 2017년 5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클래식 버스킹'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클럽M 제공

올해도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시도들이 잇따른다. 다음달에는 첼리스트 박유신과 피아니스트 임현진이 마포구 한강게스트하우스에서 바흐와 라흐마니노프 곡을 연주한다.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경의선 숲길에는 비올리스트 원소명과 피아니스트 임상아의 연주가, 마포구 신석초등학교에는 기현정이 포함된 타악 앙상블 미스엘의 연주가 울려 퍼질 예정이다.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는 8일과 9일 각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비무장지대(DMZ)인근 경기 파주 도라산역에서 바흐의 6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한다.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지난해 10월 클래식 재즈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지난해 10월 클래식 재즈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다양한 실험은 ‘클래식은 무겁고 어렵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음악계 공감대가 커지면서 지속되고 있다. 대중성과 멀어지면 시장 확대가 어렵고, 이는 곧 음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소프라노 박미현은 “클래식 음악이 꼭 정장을 갖춰 입고 공연장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리고 싶었다”며 “오페라 무대가 많지 않은 국내 환경 속에서 성악가로서도 진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요요마 공연을 기획한 크레디아 역시 “더 많은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공연장 밖에서 진행되는 ‘파크 콘서트’를 매년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래식 애호가들 중 젊은 세대 비중이 높은 국내 시장 형태상 이 같은 변주는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 여러 기회로 클래식 음악의 맛을 본 이들이 정식 시장으로 유입되고 나아가 마니아층으로까지 발전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아현시장 공연 등을 기획한 마포문화재단 관계자는 “야외나 공연장 바깥의 무대에 접근하는 청중은 젊은층이 대다수”라며 “국내 특성상 2030세대가 이러한 공연을 본 뒤 시장에 들어올 확률도 커 다양한 무대 기획에 공을 들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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