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한층 격화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미중 무역협상 재개를 위한 조율작업마저 난항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장기 투쟁”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자, 이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버티면 출혈이 더 클 것’이라며 경고했다. 양측 협상단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양국 정상들도 잇단 발언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15% 추가 관세를 미뤄달라는 중국 측 요청을 미국이 거부한 이후 양국이 9월 중 계획한 협상 일정에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통신은 협상 범위를 먼저 정하자는 미국과 추가 관세를 미뤄달라는 중국 요구가 부딪히면서 협상 날짜 조율에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3일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높였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시 주석은 중앙당교의 간부 교육생들 앞에서 "우리가 맞이한 각종 투쟁은 단기가 아니라 장기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속에서 경제 둔화에 직면했고, 또 홍콩 시위가 격화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동시에 맞고 있다.
이어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발전은 다양한 위험과 도전이 함께 부상하는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면서 경제와 국방, 정치, 외교, 홍콩, 대만 문제 등의 우려를 꼽았다. 또 “중국은 반드시 단호히 투쟁해야 하며, 또한 투쟁에서 승리해한다”면서 “투쟁 정신”을 강조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할 경우 자신의 권력 장악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서두르지 않고 오는 2020년 미 대선까지 시간을 끌며 장기전을 하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이날 발언 역시 미국과의 무역전쟁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수 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우리는 중국과의 협상을 매우 잘 해나가고 있다”면서도 “나는 그들(중국)이 미국 뜯어먹기(연간 6,000억달러 무역적자)라는 관행을 계속해나갈 수 있도록 새 정권을 상대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2020년 미 대선까지) 16개월은 긴 시간”이라면서 “그동안 (중국의) 기업과 일자리에 막대한 출혈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내가 재선에 성공할 때 중국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라”면서 “합의는 더 어려워질 거다! 그동안 중국의 공급체인은 무너지고, 기업과 일자리, 돈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내년도 미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것을 기대하고, 무역협상을 타결하지 않은 채 버티는 전략을 쓴다면 훨씬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란 주장이다.
다만 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보복관세만 놓고 보면 수입액이 많은 트럼프 미국 행정부 쪽이 관세발동 여력이 큰 것으로 평가되지만, 양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트럼프 정권 쪽이 더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을 내놓은 바 있다.
신문은 이날 자사 해설기사 ‘닛케이 뷰’에서 당장 내년 11월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별로 여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대선이 약 1년 2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재선 열쇠를 쥔 미국 중서부 경합 지역의 농민들 사이에서는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중국의 관세 부과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속한 무역협상 타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반면 시 주석은 정치적으로 더 여유있다는 평가다. 한때 무역전쟁 장기화를 두고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시 주석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지난 달 중순 중국은 은퇴한 당 원로와 시 주석 지도부가 중요 의제를 논의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회의'를 무사히 마쳤다. 이로서 시 주석의 당내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대미 협상에도 한결 숨통이 트였다는 분석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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