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광주시장을 둘러싼 ‘전두환 비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시장이 전두환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자신을 전두환 비서 출신이라고 지칭하며 광주시정을 비판한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시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고 고소까지 하면서다.
4일 시 등에 따르면 이 시장은 지난달 6일 “고(故) 안병하 치안감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A(53)씨가 ‘이용섭 시장은 전두환의 비서다’는 가짜 뉴스를 SNS에 게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씨를 상대로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광주지법에 냈다. 이 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A씨가 16차례에 걸쳐 언론 인터뷰와 페이스북 등에 ‘이 시장은 전두환 비서’라는 허위사실을 게재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지난달 23일엔 이씨를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소도 했다. 앞서 이 시장은 지난해 6ㆍ13지방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경선 과정에서도 A씨를 같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가 경선 후 취소했다.
이 시장이 법원의 판단을 구한 이번 사건 재판의 쟁점은 △전두환 정권 때 청와대 사정비서실 2부 행정관으로 근무(1985년 12월~1987년 6월)했던 이 시장을 당시 전 대통령의 비서로 볼 수 있는지 △비서로 본다면 A씨에게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두 가지다.
문제가 된 표현은 A씨가 페이스북 등에서 “전두환 비서 출신 이용섭”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여기서 ‘전두환 비서’란 표현엔 대통령 호칭이 생략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줄곧 “전두환의 비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시장은 이어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건 재무부에서 서기관(4급)으로 승진하면 파견을 나가야 하는 인사교류 원칙에 따라 청와대 사정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당시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시장이 청와대 근무 당시엔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1월 청와대(대통령 비서실) 인사수석실 전 행정관(5급)의 군 장성급 인사 자료 분실 사건과 관련해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그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김 대변인은 문제의 행정관이 2017년 9월 인사 자료 분실 후 외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만난 걸 두고 “행정관이든 인사수석이든 똑같이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수행하는 비서”라고 말했다.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는 행정기관인 대통령 비서실의 하부조직에 속한 공무원들도 넓은 의미에선 ‘대통령의 비서들’이라는 얘기다. 이에 비춰 보면 이 시장도 청와대 사정비서실 2부 소속 행정관으로 근무할 당시엔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였다고 볼 수 있다. A씨에게 ‘전두환 비서 출신’이란 표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책임을 묻긴 어렵다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A씨가 이 시장을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적시(표현)를 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
이 시장이 굳이 들추고 싶지 않았을 ‘전두환 비서’ 논란을 스스로 쏘아 올린 건 이번 기회에 ‘전두환 부역’ 프레임을 깨고 이 문제가 더 이상 정치 공세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이 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A씨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악의적 상습적으로 허위사실을 SNS 등을 통해 유포하고 있다”고 발끈한 데서 잘 읽힌다.
그러나 이 시장이 승소하더라도 법원이 이 시장에 대해 ‘전두환의 비서였다’고 판단한다면, 전두환 부역 프레임을 걷어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 시장으로선 모양만 사납게 될 수도 있다. 실제 누군가가 ‘전두환 부역’이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글의 전체 맥락을 고려했을 때 의견 제시에 불과하다면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려워 처벌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 시장이 발을 빼는 것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시장이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에게 재갈을 물리려 했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일을 두고 “이 시장이 정치적으로 얻는 게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