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이 아무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Brexit) 강행을 주장해 온 보리스 존슨 총리의 계획을 막아 세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존슨 총리의 하원 해산 및 조기 총선 개최 움직임도 좌절시켰다. 존슨 총리는 취임 한 달여 만에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영국 하원은 4일 오후(현지시간) 브렉시트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노동당의 힐러리 벤 의원이 제출한 이른바 유럽연합(탈퇴)법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327표, 반대 299표로 28표차 가결했다. 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여왕 재가’까지 거치면 정식 법률로 효력이 발생한다.
‘노 딜 브렉시트 방지법’으로 불려 온 유럽연합(탈퇴)법은 EU 정상회의 다음날인 10월 19일까지 정부가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거나,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도록 했다. 둘 다 실패할 경우 존슨 총리가 EU 집행위원회에 브렉시트를 2020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했다. EU 집행위가 3개월 연기를 받아들이면 존슨 총리는 이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 법안은 EU가 연기 기간과 관련해 3개월이 아닌 별도 제안을 내놓을 경우에도 하원이 이를 반대하지 않는 한 존슨 총리가 이틀 안에 이를 수용하도록 했다.
하원이 법안을 가결한 직후 존슨 총리는 즉각 하원 해산, 조기 총선 개최를 위한 동의안을 상정하고 10월 15일 총선 실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어진 표결에서 존슨 총리의 조기 총선 동의안은 찬성 298표, 반대 56표로 부결됐다. 찬성표는 가결 정족수인 434명에 턱없이 못 미쳤다.
영국 ‘고정임기 의회법(Fixed-term Parliaments Act 2011)’에 따르면 조기 총선이 열리기 위해서는 하원 전체 의석(650석)의 3분의 2 이상, 즉 434명의 의원이 존슨 총리가 내놓은 조기 총선 동의안에 찬성해야 한다. 이날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등 주요 야당은 표결에서 기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존슨 총리는 제1야당 노동당의 코빈 대표를 겨냥해 “코빈 대표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선거 개최를 거부한 첫 번째 야당 대표일 것“이라며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존슨 총리는 앞서 이날 정오께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한 하원 ‘총리 질의응답(Prime Minister's QuestionsㆍPMQ)’에서도 코빈 대표에게 10월 15일 조기 총선 개최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 정치권은 그러나 전날 보수당 필립 리 의원이 탈당한 후 자유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데다, 당론을 어기고 브렉시트 관련 의사일정 주도권을 하원에 부여하는 방안에 찬성표를 던진 보수당 의원 21명이 제명되면서 이날 조기 총선 동의안은 부결될 것으로 전망해 왔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표결권이 있는 의석수가 310석이었던 보수당은 탈당과 제명 등으로 현재는 289석으로 줄었다. 협력 정당인 민주연합당(DUPㆍ10석)을 합하더라도 과반(320석)의 지위를 상실한 상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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