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철거업체 대표와 감리 등 8명 송치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서울 잠원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는 입맛대로 공사를 진행한 철거업체와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감리자ㆍ건축주의 무책임이 원인이었다는 게 경찰 수사로 확인됐다.
지난 7월 4일 건물 붕괴 이후 10명의 전담팀을 꾸려 약 두 달간 수사를 진행한 서울 서초경찰서는 철거작업 시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다수의 사상자를 낸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로 철거업체 실질적 대표인 현장소장 A씨와 감리 B씨 등 8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A씨와 B씨는 구속됐다.
수사 결과 구청에 신고한 철거작업계획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날림 공사’가 사고를 불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안전보건공단 등의 합동조사에서는 철거건물 지지대가 작업계획서에 적힌 것보다 적게 설치됐고 철거 작업이 옥상이 아닌 지상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계획서 상으로는 건물 각 층에 지지대 10개씩 모두 60개를 설치한 뒤 무게가 가벼운 굴착기로 4, 5층을 먼저 허물고 큰 굴착기로 1~3층을 철거하는 게 순서였다.
붕괴 전날 3층 바닥판이 무너졌으나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철거작업을 계속한 게 사고로 연결됐다.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당일 반출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이날 무너진 3층 바닥판 등 폐기물은 치워지지 않고 2층 바닥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굴착기 기사가 발견해 현장 책임자에게 이야기했지만 책임자는 오히려 기사의 입단속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3층 바닥판을 포함해 6월 20일 공사가 시작된 이후 현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전혀 치워지지 않았다. 국과수는 폐기물의 하중으로 건물이 붕괴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경찰 조사에서 구속 송치된 A씨 등은 “공사 현장의 관행”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현장소장, 감리자, 굴착기 기사, 건축주 등의 부주의가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건물이 붕괴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구청에 제출한 철거계획에 따라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잠원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는 7월 4일 오후 2시 23분쯤 발생했다. 건물 앞을 지나던 차량들이 무너진 외벽에 깔렸다. 이중 한 차 안에 있던 이모(29ㆍ여)씨가 숨졌고 황모(31)씨는 중상을 입었다. 이들은 결혼을 앞둔 연인이고 함께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길이었다.
사망한 이씨 유족은 서초구청 건축과장 등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고소했지만 경찰은 구청 공무원들의 위법사항이나 규정 위반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초기부터 (공무원 처벌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으나 업무상과실치사상, 직무유기 혐의와 관련해 구청 직원들의 관리감독 의무를 현행 법령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경찰은 내년 5월 시행되는 건축물관리법에 공무원의 현장 감독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관계기관에 통보할 방침이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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