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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조국 대전’이 소환한 청문회 망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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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조국 대전’이 소환한 청문회 망국론

입력
2019.09.0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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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본질은 전문성ㆍ정책 역량 검증

20년째 저급한 정치 공방의 장으로 전락

검찰 개입으로 ‘국회 검증’ 원칙 무너져

조국 청문회를 계기로 기능을 상실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조국 청문회를 계기로 기능을 상실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2014년 5월, 안대희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의 변호사 시절 수임 내용이 공개돼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졌다. 대법관 퇴임 뒤 5개월 동안 받은 수임료가 무려 16억원. 그는 재산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지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전관예우로 벌어들인 돈을 환원해 총리 자리를 얻어 보겠다는 ‘신종 매관매직’”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후보 지명 6일 만에 사퇴했다.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이었다.

이어 지명된 언론인 출신 문창극 후보자도 14일 만에 낙마했다.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교회 발언이 역사 왜곡 논란으로 번졌다.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까지 분노한 여론에 동조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지켜질 때 그 사회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다. 청문회는 없어지고 낙인찍기만 남은 곳에 이제 누가 나서겠는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두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됐다. 새누리당은 망신주기 식 정치 공세로 변질된 인사청문회를 개혁하겠다며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 만에 3명의 총리 후보자(김용준ㆍ안대희ㆍ문창극)가 낙마했다. 인사청문 검증이 지나치게 가혹하다.”(윤영석 원내대변인) “청문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박 대통령) 실제 19대 의원들이 인사청문회를 정책ㆍ자질 검증(공개)과 도덕성 검증(비공개)으로 이원화하는 법안 등 42건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도 못 하고 폐기됐다.

이제 여야 공수 교대다. 한국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절차적 민주주의를 헌신짝처럼 걷어찼다. 법적 시한을 넘겨 질질 끌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마지못해 청문회 개최에 동의했다. 전례 없이 총리보다 긴 3일 청문회를 요구하고, 후보자의 처 어머니 동생 등 온 가족을 증언대에 세우는 ‘가족청문회’를 꾀했다. 그 의도는 뻔하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상징하는 조국을 죽여 정권을 흔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대선주자를 능가하는 무차별 들추기에 나선 것도 배경은 비슷하다.

조국 청문회에 대한 여권 반응은 2014년 새누리당의 데자뷔다. “후보자에 대한 합리적 정책이나 자질 검증은커녕 먼지 떨기식 모욕 주기와 망신 주기로 국민의 냉정한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 인사청문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원혜영 민주당 의원) “인사청문회를 정쟁으로만 몰고 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청문회가 두려워서 사양하는 일이 늘고 있다.”(문 대통령)

앞으로 장관감 구하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와 흠집 내기는 물론 검찰 수사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은 ‘국회 검증 절차를 거친 공직자 임명’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무력화했다. 검찰이 국회 검증에 앞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 야권의 의혹 제기나 고발을 당한 후보자는 검찰 특수부를 총동원한 대규모 수사진의 무차별적 압수수색과 피의사실 유출로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처 딸 동생 등 온 가족이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릴 것이다. 누가 감히 장관이 되겠다고 나서겠나.

국회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째다. 고위공직자의 능력과 자질 검증이 목적이다. 정부 역할이 대국민 서비스기관으로 바뀐 지 오래여서 전문성과 정책 역량 검증이 도덕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현실은 거꾸로다. 도덕성 공방으로 날밤을 지샌다. 정략에 따라 도덕성 기준도 수시로 바뀐다. 정치인 출신에겐 관대하고 교수 관료에겐 더 엄격하다. 일개 장관에게 이명박, 박근혜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여기에 정치 검찰까지 끼어들어 대신 검증의 칼춤을 춘다. 지금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시대적 효용을 다했다. ‘정치 청문회’를 방치하면 나라가 거덜날 게다. 청문회 무용론을 넘어 청문회 망국론이 나오는 까닭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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