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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태풍, 보름달’ 추석 주요 단어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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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태풍, 보름달’ 추석 주요 단어 봤더니…

입력
2019.09.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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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1위는 ‘고속도로’

상황 따라 ‘보름달’, ‘태풍’, ‘IMF’, ‘세월호’도 주요 화두로

2007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2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2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한국일보 자료사진

추석의 ‘고속도로’는 평소와 다르다. 조금 많이 막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서울과 부산, 강릉, 광주를 잇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함께 모여 두둥실 뜬 ‘보름달’을 보는 것도 추억이 된다. ‘슈퍼문’이 뜬 추석이 특히 그렇다. 태풍 피해로 인한 수재민들의 사연, ‘IMF(1999년)’, ‘세월호(2014년)’ 등 안타까운 소식에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추석도 있었다.

추석에는 무슨 이야기를 나눠왔을까? 올해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추석 연휴 기간(추석 포함 3일) 나온 기사를 분석했다. ‘빅카인즈’에 저장된 54개 언론사 기사 중 ‘추석’을 키워드로 해서 가장 많이 언급된 주요 단어를 추렸다.

1999년부터 2009년, 2014년에는 기사가 1,000건 미만이어서 전수 조사했고, 1,000건이 넘는 2010~2013년과 2015~2018년에는 ‘추석’과 연관성, 가중치가 높은 기사를 기준으로 1,000건을 뽑아 분석했다. 가중치는 추석이라는 단어 검색 결과에서 네트워크 알고리즘으로 연관성과 유사성이 높은 정도를 뜻한다. 이 결과를 토대로 각 연도별 주요 단어를 선정하고 추가로 단어의 연관 기사를 추렸다.

◇20년간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고속도로’

추석 기사 워드 클라우드. 데이터분석 박서영
추석 기사 워드 클라우드. 데이터분석 박서영

분석 결과 지난 20년간 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1위는 ‘고속도로(4,815건)’였다. 고속도로는 매해 1위 또는 2위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관심사로 꼽혔다. 고속도로와 관련해 ‘대구’, ‘부산’, ‘강릉’, ‘광주’ 등 행선지로 보이는 단어들도 순위권에 들었다. ‘교통사고’, ‘귀성객’ 등 고속도로 상황과 연관되는 단어들도 많이 쓰였다. ‘보름달’ 역시 매년 5위권 안에 꼽힌 단어였다.

◇고속도로 연관 단어는 ‘통행료’, ‘정체’, ‘교통 사고’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2017년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통행료를 면제하자는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89년부터 나왔다. 89년 9월 26일 한국일보 독자 안계수씨는 ‘독자들의 토론광장’을 통해 “대만에 잠시 거주할 때 보니 그들은 설날 연휴에 전 고속도로 구간의 통행료를 2~3일간 받지 않았다”며 명절 연휴에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말자고 제안했다. 안씨는 “추석 등 명절 때 만이라도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면 톨게이트에서 정차하는 시간만큼 체증을 덜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의견이 반영되기까지 28년이 걸렸다.

1989년 9월 26일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9년 9월 26일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통 정체는 ‘추석 고속도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특히 정체를 유발하는 무질서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단속 방법은 변했다. 2000년 8월 29일 ‘2,900만 이동… 최악교통전쟁’이라는 기사를 보면 경찰은 무질서 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신고 엽서를 받았다. 시민들이 직접 법규를 위반한 차량을 엽서로 고발하는 형태다. 블랙박스도 없었던 때다. 19년 뒤인 올해는 드론이 단속에 나선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추석 연휴에는 47대의 드론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및 지정차로 위반 차량과 갓길운행 차량, 끼어들기 차량 등을 따라가며 단속한다.

통행량이 많다 보니 교통사고도 주요 화두에 올랐다. 특히 2006년 추석 연휴 직전인 10월 3일 경기 평택시 서해대교에서는 차량 29대가 연쇄 추돌해 1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사에서 당시 홍승진 충남 당진소방서 현장대응팀장은 “현장에 오니 탱크로리에서 8m나 되는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고, 수많은 부상자들이 차량에 갇혀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119구급대원들이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면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구간에서 28중 추돌사고 발생 직후 불탄 차량에 있던 희생자를 옮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19구급대원들이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면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구간에서 28중 추돌사고 발생 직후 불탄 차량에 있던 희생자를 옮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더 큰 참사를 막은 건 의인(義人) 덕분이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신원을 밝히지 않은 30대 남자’는 사고 차량의 유리창을 깨서 운전자와 탑승자들을 구조했다. 사고 현장에 있던 고속버스 운전사 이만수씨는 “사고가 나 정신이 아득한데 길 건너편에서 한 청년이 차를 세우고 중앙분리대를 넘어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며 “차에서 불이 난 상태여서 만약 이 청년이 아니었다면 사망자가 더욱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10월 4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6년 10월 4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야속한 태풍… 역귀성객 사연 알려져

추석을 앞두고 몰아치는 태풍은 어느 때보다 야속하기만 하다. 거친 비바람은 한해 농사의 꽃인 추수의 기쁨을 앗아가고, 차례상 물가 상승이라는 서글픔만 남긴다.

20년 전 태풍 바트는 추석 귀성과 귀경길을 막막하게 만들었다. 1999년 9월 21일 ‘줄 태풍에 호우경보 추석 비상’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당시 제18호 태풍 ‘바트’의 영향으로 추석인 24일까지 간간이 비가 이어져 귀성과 귀경길 교통 정체를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추석을 앞두고 마을 전체가 물에 휩쓸린 수재민들도 있었다. 2002년 9월 20일 태풍 루사로 집을 잃은 어르신들은 서울로 역귀성을 했다. 당시 ‘컨테이너에 손주들 재울 수야… 추석 쇠러 서울 왔지’라는 기사에 “수해로 폐허가 된 고향에서 추석을 보내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 어머니를 설득해 같이 올라 왔다”며 “마을에 남은 10여가구도 모두 추석을 쇠러 대처에 있는 자식들 집으로 떠났다”는 시민의 말이 당시 상황을 알려준다.

2002년 9월 20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9월 20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태풍은 직접 강타하지 않고도 한가위를 방해했다. 2008년 추석은 때아닌 폭염으로 제수 음식 관리에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태풍 실라코 영향으로 때아닌 한가위 폭염에 시달린 추석이었다. 2008년 9월 16일 ‘여름 추석’이라는 기사에는 “추석 전날 만든 제수 음식을 냉장용 박스에 넣어 고향에 내려갔는데 땡볕 더위에 얼음이 녹아 음식이 상하는 바람에 다시 만들어야 했다”고 밝힌 회사원의 이야기가 담겼다.

2008년 9월 16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9월 16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 ‘IMF(1999년)’, ‘세월호(2014년)’ 등 슬픈 추석에도 ‘보름달’은 뜬다

2001년 9월 20일 금형가공업체들이 밀집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골목. 이곳 금형공장들은 예년 같으면 추석을 앞두고 밀려드는 일감을 소화하느라 부산했지만 2001년에는 유례없는 경기침체로 주문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1년 9월 20일 금형가공업체들이 밀집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골목. 이곳 금형공장들은 예년 같으면 추석을 앞두고 밀려드는 일감을 소화하느라 부산했지만 2001년에는 유례없는 경기침체로 주문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IMF 시대, 올해 한가위에는 음덕을 기리는 데에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게 됐다. 마리당 1만~1만5,000원 선이나 하는 조기는 지금 어울리는 제물이 아니다.(1998년 9월 30일자 한국일보 기사)”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여전했던 98년 추석 풍경을 볼 수 있던 기사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추석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연휴 첫날을 맞았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 보수 성향 단체들은 추석 연휴 첫날인 6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유가족과 시민들 근처에서 폭식 행사를 벌였다. 2014년 9월 10일 ‘세월호 아픔 조롱하는 폭식 행사’라는 기사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특별법 제정 반대 서명운동과 함께 단식에 반대하며 ‘폭식 행사’를 연 이들 중 일부는 음식물을 들고 단식 중인 세월호 가족들이 보란 듯 광장을 활보했다. 동아일보사 앞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박근혜 대통령 만세’를 외치며 술과 음식을 먹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파티를 방불케 했다.”

2014년 9월 10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9월 10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은 해 추석 당일이었던 8일, 당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차례도 못 지내고 성묘도 못한 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수색 작업만 지켜봤다. 평소 같으면 가족과 함께 보냈을 명절,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을 테다. ‘조상 뵐 면목이… 눈물로 달 맞은 팽목항’ 기사에는 가족들이 “둥근 달빛이 내린 바다 위로 아들딸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통곡했다”고 적혀있다.

2014년 9월 10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9월 10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추석이라고 늘 좋은 소식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태풍’, ‘고속도로 정체’, ‘교통사고, ‘IMF’, ‘세월호’ 등 아픔과 답답함도 상존했다. 그래도 매년 ‘보름달’은 떴다. 보름달은 지난 20년간 추석 관련 기사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였다.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휘영청 둥근 달은 어떤 시련도 다 괜찮아질 거라는, 견딜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듯하다. 사람들이 매년 추석마다 ‘보름달’ 관련 기사를 보며 몇 시에, 어디에서 보름달을 잘 볼 수 있을지 매번 검색하는 이유일 테다.

2014년 9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국민 한가위 마당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있다. 9일 광화문 광장의 모습과 보름달 모습을 한 화면에 다중촬영으로 담았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2014년 9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국민 한가위 마당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있다. 9일 광화문 광장의 모습과 보름달 모습을 한 화면에 다중촬영으로 담았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보름달에 무슨 소원 비셨나요? 서울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이 광교부근을 지나며 2006년 10월 5일 한가위 보름달 아래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니콘 D1H 에 Nikor 500mm, Nikor 18mm 촬영 후 합성.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름달에 무슨 소원 비셨나요? 서울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이 광교부근을 지나며 2006년 10월 5일 한가위 보름달 아래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니콘 D1H 에 Nikor 500mm, Nikor 18mm 촬영 후 합성.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 추석 보름달은 13일 오후 6시 38분에 뜰 것으로 예상된다. 보름달이 가장 높이 뜨는 시각은 14일 0시 12분으로 예측됐다. 믿거나 말거나, 어른들은 추석에 보름달을 보면 풍성한 기운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한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데이터분석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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