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 불려…74세로 생 마감
“사진은 관점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작품 그 자체의 미가 중요하다. 얼굴 주름을 지우고 화사하게 하는 등 ‘리터치’하는 건 일종의 범죄라고 생각한다.”
‘패션 사진 거장’이라 불리는 사진작가 피터 린드버그가 2013년 서울 개인전 당시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이다. 린드버그는 얼굴의 점, 다크서클 등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미(美)를 완성시킨다고 했다. 이 모든 걸 사진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본인의 임무라고도 했다.
그간 모델 특유의 개성을 담아낸 사진으로 ‘본인의 임무’를 다 해온 린드버그가 별이 됐다. 스티븐 마이젤, 파울로 로베르시와 함께 ‘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로 불리는 린드버그는 지난 3일(현지시간) 74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거장의 타계 소식은 지난 4일 린드버그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흑백 사진 한 장과 “피터 린드버그가 2019년 9월 3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을 발표하게 돼 매우 슬프다. 그는 아내와 전처, 네 명의 아들, 일곱 명의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는 부고가 전해졌다.
린드버그는 1944년 독일 점령 하의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뒤스부르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백화점 쇼윈도 장식 조수를 시작으로 예술 아카데미, 예술 대학 등에서 미술을 배웠다.
미술을 공부하던 린드버그는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진 작가 한스 룩스의 조수로 2년간 일했다. 이후 1978년 프랑스 파리에서 본격적인 사진 작가로의 길을 걷게 된다. 린드버그는 세계적인 패션 매거진 보그와의 작업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더 뉴요커, 베니티 페어, 알뤼르 등 유명 매거진과 작업이 이어졌고 그의 사진은 호평을 받았다.
유명세를 이어가던 린드버그는 1988년 당시 미국 보그 편집장으로 임명된 안나 윈투어와 계약을 맺고 윈투어의 첫 미국 보그 커버를 촬영하기도 했다. 윈투어와 함께 한 이 작업은 향후 그가 세계적인 스타, 유명인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96년 발간한 린드버그의 첫 번째 사진집 ‘10 women by peter Lindbergh’(10명의 여성들)는 1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인기를 얻었다. 사진집의 성공과 이어진 작업물에 대한 호평은 린드버그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가져다 줬고 그는 패션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갑작스러운 거장의 별세 소식에 그와 함께 작업한 스타들도 애도를 이어갔다.
영국 해리 왕자의 부인인 메건 마클 왕자비는 SNS로 린드버그를 추모하며 “’변화를 위한 힘’은 이 존경 받는 사진작가의 마지막 출판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됐다.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마클 왕자비는 린드버그의 생전 마지막 작업이 된 보그 영국판 9월호 특집 촬영을 함께 했다.
할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 나오미 왓츠 등도 SNS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키드먼은 “피터 사랑한다. 당신이 말할 수 없이 그리울 것”이라며 린드버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왓츠 또한 “피터 린드버그에 대한 슬픈 소식을 접한 뒤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라며 “그와 작업할 때 나는 내가 카메라 앞에 있다는 것을 잊곤 했다. 그에 대해 기억해야 할 멋진 것들이 정말 많다. 그가 그리울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들은 린드버그를 추모하며 모두 흑백사진을 첨부했다. 린드버그 작품 대부분은 흑백사진이다. 그는 흑백사진이 현실을 넘어선 사물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흑백사진은 그의 ‘특징’이 됐다. 린드버그는 2013년 서울 개인전 당시 기자회견에서 유독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런 답을 남겼다.
“현실은 컬러다. 현실을 벗어난 흑백을 사랑한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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