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23>네이멍구 츠펑 ①푸르디푸른 몽골족의 초원과 호수
네이멍구 궁거얼 초원에서 야생말들이 물을 마시고 있다.

몽골족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네이멍구자치구는 대략 위도 37~53도, 경도 97~126도에 위치한다. 숫자만으로 상상하기 어렵지만 지도로 보면 동서로 길다. 대한민국의 5배에 이르는 영토다. 베이징과 비교적 가까운 동남부 츠펑(赤峰)에는 한여름에 더욱더 아름다운 초원, 호수, 석림, 사막이 있다. 몽골족의 문화와 생활도 이국적이다. 우란부퉁 및 궁거얼 초원, 다리눠얼 호수, 아쓰하투 석림, 우단 사막을 두 번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네이멍구 츠펑 여행 지도.

초원,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말이 떠오른다. 전쟁터이자 삶의 공간이었다. 유목민족의 생명줄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던 민족이 아니다. 몽골족은 초원에서 이동 수단인 말과 함께 성장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왕은 동양을 정벌했다. 약 1,000년 후 13세기, 칭기즈칸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한다. 아시아와 유럽, 동양과 서양은 장군멍군이었다. 말의 질주처럼 초원을 넘어 세계를 호령하던 민족, 지금 중국 내 몽골족은 고작 600만명이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민족문화를 만나는 여행은 즐거운 흥분이다.

2007년 여름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만난 몽골족으로부터 숫자를 배웠다. 엄청 난해했던 기억이 난다. 12년이나 흘렀고 기억에 남거나 떠오를 리 만무하다. 몽골어를 조금 공부하고 떠나고 싶었다. 네이멍구자치구는 중국 땅이라 중국어로 만난다. ‘몽골 초원에서는 몽골어로’ 여행 기분을 내면 좋지 않을까? ‘머링호~르(МОРИН ХУУР)’, ‘호’에서 ‘르’까지 장음이라 발음할수록 재밌다. 이번에도 만날 기대를 품고 네이멍구로 들어간다. 그게 무엇인지는 글 끝머리에 있다.

허베이를 지나 네이멍구로 가는 국도변에 유채가 노랗게 피어 있다.
네이멍구 국도변 관망대에서 본 우란부퉁 초원.
우란부퉁 초원의 양 떼.

베이징 공항을 출발해 ‘열하일기’의 땅 청더(承德)를 거쳐 약 430km, 6시간을 이동한다. 1시간을 남기고 유채꽃이 도열한 도로를 계속 달리다가 허베이 경계를 넘으면 네이멍구다. 강렬한 오후의 햇볕이 누그러지기 시작하는 우란부퉁(乌兰布统) 남문을 통과해 초원으로 들어선다. 몽골어로 ‘붉은 제단이 펼쳐진 산’이란 뜻이다. 차를 멈추고 낮은 관망대에 올라 초원의 전경을 감상한다. 멀리 봉긋한 산이 군데군데 보인다. 양 떼는 줄을 맞춰 아장아장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초원에 여름이 왕성하면 초록이 가득하고 야생에서 자란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다.

네이멍구 여행객 일행이 우란부퉁 초원의 석양을 배경으로 ‘공중부양’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우란부퉁 초원의 야생화.
우란부퉁 초원의 예야후 호수.
우란부퉁 초원의 자작나무와 노을.

서서히 해가 지고 있다. 붉은 노을이 초원을 뒤덮고 있고 야생화는 여전히 맵시를 드러내고 있다. 노을을 배경으로 공중부양하는 일행은 신났다. 하늘로 솟구치는 율동을 찍으니 꽃의 윤곽도 살아난다. 하늘과 노을은 여전히 초원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 초원의 동물에게 휴식공간 같은 호수, 예야후(野鸭湖)로 이동한다. 풀과 꽃을 먹은 후 물까지 마음껏 마시니 ‘행복한’ 초원이다. 노을이 숨기 전이라 그런지 여유롭게 노니는 말 떼의 갈기조차 붉어 보인다. 앙상한 가지, 키 작은 한그루 자작나무가 외롭게 서서 노을을 응시하고 있다.

이제 초원 도로를 따라 호텔로 돌아간다. 우란부퉁은 행정구역상 츠펑시 커스커텅(克什克腾) 기(旗)에 속한다. 중국의 시는 베이징, 텐진, 상하이, 충칭을 포함한 직할시(直辖市), 각 성의 수도인 성급시(省级市), 지급시(地级市), 현급시(县级市) 순서로 나뉜다. 츠펑은 지급시다. 지급시에는 현급시와 그냥 현이 포함된다. 네이멍구자치구의 행정단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다르다. ‘깃발’ 기는 현에 상응한다. 현보다 상위 개념은 맹(盟)이다. 츠펑도 원래 자오우다(昭乌达) 맹이었다. 기 아래에는 진(镇), 더 아래에 기초 단위인 촌(村)이나 향(乡)이 있다. 네이멍구에는 향 대신에 몽골족 용어인 소목(苏木)이란 말이 남아 있다. 몽골어로는 ‘솜(СУМ)’이다. 우란부퉁 솜에 위치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우란부퉁 초원의 마차 투어.
우란부퉁 초원의 군마훈련장.

아침이 밝자 제3군마훈련장을 찾는다. 예전에는 출전을 앞둔 신마 훈련소였다면 지금은 여행객을 위한 승마장이다. 수십 마리의 말이 손님을 기다린다. 전쟁터를 누비던 군마의 위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할이 있으니 다행이다. 말을 타고 초원으로 들어가려면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대부분 혼자 말을 타지만 여러 명이 타는 마차도 있다. 최대 8명까지 태우려고 두 마리 말이 열심히 달린다. 마부는 채찍으로 거듭 말의 어깨를 때려 속도를 높인다. 혼자 말을 타면 마부가 고삐를 잡고 안전을 보장한다. 마차를 타고 달리며 승마로 오가는 모습을 본다. 마차나 승마는 모두 펑황링(凤凰岭)까지 1시간가량 왕복한다.

우란부퉁 초원 부근의 유채밭.
궁거얼 초원 도로에서 만난 소 떼.

이제 우란부퉁을 벗어난다. 북문을 지나 초원을 빠져나간다. 조금 지나니 유채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초원에 유채를 심어 풍년이면 대박이다. 식용유를 만드는 유채이니 동물의 초원이 농토로 바뀐 셈이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변해버린 풍광을 지나칠 수 없어 유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유채밭은 10km 이상 계속 이어져 있다. 산을 넘어가는 꼬부랑길을 넘어 커스커텅의 행정중심지 징펑(经棚) 진에 이른다. 초원도 이름마다 풍광이 서로 다르다. 이제부터는 궁거얼(贡格尔) 초원이 이어진다. 자유자재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 떼를 신호등 삼아 초원을 달린다. 1시간 30분을 더 가면 거대한 호수인 다리눠얼(达里诺尔)이 있다.

다리눠얼 호수의 만퉈산 풍력발전기.
만퉈산에서 본 다리눠얼 호수.

다리눠얼은 ‘바다 같은 호수’라는 뜻이다. 네이멍구에서 두 번째이자 츠펑에서 가장 큰 호수로 면적이 약 240㎢다. (참고로 서울은 605㎢다.) 수억 년 전 바다가 융기한 후 흐르지 못하고 막힌 언색호다. 염수와 담수가 섞인 호수이기도 하다. 남문으로 들어가 전동차를 타고 호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만퉈산(曼陀山)으로 오른다. 풍력발전기 날개가 묵직하게 돌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호수는 잔잔하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날씨는 맑다. 마치 바람 많은 제주 섭지코지의 언덕과 비슷한 분위기다. 낭떠러지 옆으로 만든 계단을 따라 걸으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다리눠얼 호수로 가는 습지 산책로.
바다처럼 넓은 다리눠얼 호수.

산에서 내려와 벽해은탄(碧海银滩)으로 들어간다. 습지를 통과하는 계단을 걸으니 점점 호수 냄새가 난다. 어쩌면 바다 냄새일지도 모른다. 바람은 물결을 만드니 물 내음을 풍기고 있다. 북쪽 호반으로 가는 유람선이 오고 있다. 파도가 바다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출렁인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는 보트도 보인다. 수심이 최고 8m에 이른다. 일행은 물 위를 뛰어다니며 한껏 기분을 낸다. 맨땅은 약간 지저분해도 물은 맑아 헤엄치고 놀기도 한다. 살짝 호숫물을 만져 입에 대보니 정말 아주 조금 짭짤하다.

호수를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다. 차창 밖을 보는데 갑자기 말 몇 마리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무심결에 카메라를 눌렀다. 백마, 흑마, 갈마가 웅덩이를 지나고 물을 마시기도 한다. 동화처럼 선명하게 순간적으로 포착된 장면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디서 햇볕이 비추는지 물빛이 새파랗다. 일부러 연출하려 해도 어려운데 골고루 섞인 말 색깔의 조화도 인상적이다. 13마리가 정지한 듯, ‘순간’에 쏙 들어왔다. 백마 망아지는 맨 뒤에서 화룡점정처럼 한 폭의 유화를 완성하고 있다.

궁거얼 초원의 도랑과 다리.
궁거얼 초원. 땅도 하늘도 눈이 시리다.

호수 가는 길에 창밖으로 지나친 궁거얼 초원이다. 차에서 내려 초원 깊숙이 들어간다. 도랑을 넘는 소박한 아치형 다리를 건넌다. 해가 느릿느릿 서산을 넘어가는 시간이다. 강렬한 태양이 짜릿하게 비추고 바람도 질세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초원. 하늘을 시샘하듯 구름도 화면을 가득 채운다. 몽골족의 천막집인 멍구바오(蒙古包)가 한 채 자리 잡고 있다. 몽골어로 게르(ГЭР)다. 게르 안에 수십 벌의 몽골족 복장이 걸려 있다. 옷을 입고 초원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남겨도 좋다.

궁거얼 초원의 멍구바오, 게르.

몽골어는 칭기즈칸이 세계 무대에 등장한 후 창제됐다. 우리말처럼 알타이 어계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울란바토르를 수도로 하는 몽골공화국과 중국의 네이멍구는 문자 표기가 서로 다르다. 네이멍구 문자는 도무지 알기 힘들 정도로 까다롭고 복잡하다. 게다가 여전히 세로쓰기를 한다. 위아래로 봐야 한다. 가로쓰기 언어에 익숙하면 더욱더 수수께끼다. 말을 타고 달리며 글자를 쓰려고 세로쓰기가 정착됐다는 농담도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상상해보면 얼핏 그럴 듯하다. 몽골공화국은 1940년대 러시아 등에서 쓰는 음소문자인 키릴문자를 기반으로 표기 체계를 새롭게 만들었다. ‘ГЭР(게르)’는 키릴문자 표기다. 지금 몽골어는 거의 키릴문자로 배운다.

중국어와 옛 몽골문자를 함께 쓴 다라이눠르 마을의 간판.

네이멍구에서는 여전히 옛 문자를 사용한다. 꼬불꼬불하고 세로로 쓴 문자는 여행 중에서 만나는 간판마다 흔하게 볼 수 있다. ‘기초의 기초’ 몽골어를 공부해 보자. ‘문자(文字)’라는 낱말이 있다. 편의상 가로쓰기로 옮기면 ᠪᠢᠴᠢᠭ, 도무지 쓰기도 어렵고 발음도 불가능하다. 키릴문자로는 ‘бичиг’으로 표기한다. 다섯 음절이다. 몽골어는 자음(20개)과 모음(13개), 부호(2개)마다 음가가 있다. 한국어 ‘문자’는 중국어로 ‘원쯔’, 몽골어로 ‘비칙’이라 발음한다. 현대 몽골어도 한글처럼 읽으면 하루 이틀이면 발음할 수 있다.

몽골족의 환영 인사, 술과 하닥.
말 젖으로 빚은 술, 나이주.
몽골족의 양고기 요리.

커스커텅 북부에 있는 다라이눠르(达来诺日) 진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한다. 몽골족은 손님을 맞을 때 아주 열렬하다. 차가 도착하자 환영 행사가 열린다. 몽골 아가씨가 나와 우유로 빚은 술인 나이주(奶酒)를 대접하고 하얀 천인 하닥(хадагㆍ哈达)을 목에 걸어준다. 거리의 핸드폰 가게, 식당 간판마다 세로로 쓴 문자가 보인다. 식당으로 가면서 ‘우유 술’을 두 병 샀다. 나이주왕에도 세로쓰기가 보인다. 윗부분에 보이는 시멍(锡盟)은 커스커텅 북부의 시린궈러(锡林郭勒) 맹을 줄여서 쓴 말이다. 지명이 길어서다. 커스커텅 기도 그냥 커치(克旗)라 부른다. 만찬이 시작된다.

텅거리타라(腾格里塔拉) 호텔은 식당도 운영한다. 텅거리는 창공에 대한 존칭이자 천신을 뜻한다. 타라는 초원이란 말이다. 푸르디푸른 하늘과 초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찬에는 몽골 민속공연도 열린다. 춤과 노래, 연주가 어울리니 양고기 안주로 ‘우유 술’ 향기가 번지고 이국적인 낭만의 시간이 흐른다. 말 젖으로 증류한 40도 술 나이주는 마시고 나면 향긋한 초콜릿 향기가 두루 퍼진다. 향기가 멀리 간다는 백리향과 천리향도 술에 대한 찬사다. 드디어 기다리던 연주가 시작된다.

텅거리타라 호텔의 공연 사회자.
몽골족 민속악기 마타우친, 혹은 ‘머링호~르’ 연주.
몽골 초원에서의 캠프파이어.

몽골족은 악기에 말의 머리를 새겼다. 우리는 마두금, 중국은 마터우친(马头琴)이라 부르는 두 줄 현악기가 등장한다. ‘앗! 드뎌 머링호~르(МОРИН ХУУР)닷!’, 마음 속으로 외쳐본다. 중국의 자치구 백성으로 살아가고 관객도 중국인이 대부분이니 사회자도 ‘마터우친’이라 소리 높여 소개한다. ‘머링호~르’를 되뇌며 발랄하고 청아한 ‘머링호~르’ 연주를 듣는다. 만찬 후 캠프파이어로 이어진다. 애절함과 장엄함을 모두 담은 소리는 말 머리를 따라 초원으로, 초원으로 멀리, 멀~리 뻗어가고 있다. 술의 힘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밤이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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