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반군 공격, 美 “이란이 주체”… 사우디 산유량 반토막
“유가 100달러 이상으로 오를 수도… 한국 등 아시아 직격탄”
14일 예멘 후티 반군의 무인기 폭격을 맞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아브카이크 석유시설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아브카이크=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석유시설과 유전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무인기(드론)들의 공격을 받아 가동을 멈췄다. 당장 사우디 전체 산유량의 절반 가량이 시장 출하를 멈추게 돼 국제유가에 엄청난 악재가 터졌다. 경제적 파급력에 더해 미국이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면서 중동의 긴장 수위를 끌어 올리는 것은 물론, 유전 등 방어망이 충분치 않은 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이 무장단체의 새 테러 방식으로 떠올라 군사ㆍ지정학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사우디 내무부는 14일(현지시간) 오전 4시쯤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운영하는 아브카이크 탈황ㆍ정제 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이 폭탄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드론들의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 장관은 피격에 의해 하루 570만배럴 생산 차질을 확인했는데, 이는 사우디 전체 하루 생산량(980만배럴)의 절반, 전 세계 공급량의 5%에 달한다. 예멘 반정부 세력인 후티 반군은 즉각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했다. 야흐아 사레아 후티 대변인은 자체 방송을 통해 “사우디 국민의 협조 아래 드론 10대로 사우디 석유시설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 공격 대상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쿠라이스 유전은 전 세계 원유의 1%를 생산한다. 문제는 아브카이크 시설이다. 사우디는 이곳에서 원유를 탈황ㆍ정제해 각국으로 수출하는데 하루 700만배럴, 세계 수급량의 7%를 처리한다. 아브카이크 시설이 빠르게 복구되지 않을 경우 전 세계 원유 공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어 유가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전문가 로저 디완은 블룸버그통신에 “아브카이크는 아람코의 심장부와 같으며 (이번 공격으로) 심장마비가 왔다”면서 16일 국제유가 시장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라피단에너지그룹의 로버트 맥낼리 대표도 “공포가 확산되면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달러 넘게 오를 것”이라며 “유가가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컨설팅업체 리포오일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리포 사장 역시 유가 폭등을 우려하며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지역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사우디와 국제사회는 사태 파장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성명에서 “원유 재고가 충분해 공급이 잘 이뤄질 것”이라고 했고, 사우디와 미국 역시 비축유를 풀면 수급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라피단에너지그룹은 사우디가 1억8,800만배럴의 원유를 비축해 단순 계산으로 한 달 이상(37일) 버틸 수 있다고 전했다.

앙숙인 미-이란 관계는 당분간 회복 불능의 상황을 맞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란이 전 세계 원유 공급망에 유례없는 공격을 가했다”면서 후티반군을 제쳐두고 이란을 공격 주체로 못박았다. 실제 뉴욕타임스(NYT)는 유엔조사관들의 말을 빌려 “이란이 드론 및 미사일 기술 전수를 위해 전문가들을 예멘으로 파견하고 800㎞ 이상 날 수 있는 고급 드론을 후티 반군에 이전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 의중을 내비치는 등 대화를 매개로 한 대이란 제재 완화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이란은 미국의 주장을 반박했다. 1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아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그런 쓸 데 없는 혐의 제기는 의미 없고 이해할 수 없다”며 자국에 대한 미국의 최대의 압박 정책이 실패하며 ‘최대의 거짓말’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 혁명수비대 공군 사령부는 “이란 주변 최대 2,000km 내 모든 공군기지와 항공모함은 우리 미사일 사정권에 있다”면서 대미 군사 위협을 이어갔다. 이 같은 강경한 태도로 봤을 때 6일부터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이행 범위를 축소하는 3단계 조처를 시행한 이란은 앞으로 핵개발 진전을 통한 자구책을 마련할 게 분명해졌다.

드론 활용 공습의 ‘가성비’가 입증되면서 중동 역내 긴장감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드론 출발지가 예멘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드론이 최대 1,000㎞를 비행하는 동안 사우디 영공이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점에서 무장단체가 저비용ㆍ고효율 테러의 본보기로 삼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사용된 드론이 5월 사우디 남부 나지란 공항을 폭격한 가세프-2K 이상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반군은 공항과 아람코 석유 펌프장 두 곳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NYT는 “사우디는 지난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670억달러어치 군수품을 수입하고도 값싼 드론에 속수무책 당했다”며 “이런 ‘다윗과 골리앗’ 전술이 중동에 새로운 변동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