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던 모든 화장품을 버리고, 머리를 짧게 자르면서 치마와 하이힐 대신 셔츠와 바지를 입는 여성. 2018년 초 SNS에서 시작해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입니다. 그러나 종종 이런 질문들이 제기되곤 하죠. ‘왜, 굳이 저렇게 까지 ‘꾸밈’을 거부해야 하지? ‘또 다른 코르셋이 되는 거 아냐?’ 혹시 이런 의문을 해소하고 싶으신가요?
오늘 프란이 소개할 콘텐츠는 책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입니다. 오늘은 저자인 이민경님과 함께하겠습니다./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은 2016년부터 시작해서 2018년 확대된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글이고요. 이 글을 이 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17명의 여성들을 만나서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 이야기입니다.
탈코르셋 운동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된 운동이고요. 규칙이라고 하면 여성이 여성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수행하는 모든 꾸밈 행위를 중지하는 행위입니다. 탈코르셋 운동을 알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런 방법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의문이었어요. 제가 페미니즘을 오래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굳이 그렇게까지 페미니즘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질 때 저는 항상 답을 해주는 역할이었는데, 제가 이상했던 점은 탈코르셋 운동을 보고, 제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거든요. 그 지점이 스스로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아서 이 운동을 더 잘 알아봐야겠다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목적으로 삼은 바는 저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여성들 역시도 이 운동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겠다 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목적에 잘 부합할 수 있는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30대 초반, 중반까지 여성분들을 주로 인터뷰이로 내세웠습니다.
우선은 탈코르셋 운동을 처음 떠올렸을 때 여성의 욕망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옳으냐. 아니면 여성이 남성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의 평등이나 자유를 준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여성들을 만나고 나서 꾸밈을 중지한다는 이 운동의 규칙이 열어주는 새로운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매일같이 집 밖을 나갈 때 집 문밖을 나갈 때 거치게 되는 여러 가지 의례가 있어요. 그런데 그 의례는 너무 자연스럽게 이 사회에 녹아있어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매일 같이 그 문턱을 넘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 탈코르셋 운동은 그 의례를 전면적으로 중지하면서, 이 의례가 우리 삶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부자연스럽게 바라보게 해줍니다. 그러면서부터 불평등부터 시작해서 여성의 몸에 대한 기능의 관점부터 또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산업적인 압박까지 전면적으로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에 대해 가하는 다양한, 어떻게 보면 폭력일 수 있고, 억압일 수도 있고, 어떤 권위일 수도 있고 하는 것들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은 화장을 하지 않고 나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고 생각하는 인터뷰이가 계셨어요. 근데 화장을 하지 않고 회사에 갔더니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성은 자신이 으레 어떤 지적이나 어떤 평가를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의례를 수행해왔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구나 이 공간이라는 것이. 나의 얼굴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구나 하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여성은 내가 여성성이라는 걸 내가 좋아서 내가 편하게 내가 자유롭게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탈코르셋을 하고 나니까 굉장한 압력이 들어오는 거예요, 주변에서. 화장 좀 해. 왜 머리를 그렇게 잘랐어? 하는 지적들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여성이 깨닫게 되는 건 ‘내가 좋아서 이 안에 들어있다고 했던 여성성이라는 게 사실 나를 가두는 좁은 틀이었구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처럼 다양한 사회적인 문화적인 압력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일단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게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긴 머리와 짧은 머리 중에 뭐가 더 편하냐 이런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나아간 이야기였던 점. 탈코르셋 운동은 방식의 비교가 아니라, 코르셋이라는 사회적인 여성성이라고 하는 특질을 우리가 갖춘 상태에서는 ‘나는 괜찮은데?’라고 느낄 수 있는 어떤 점들을, 잠시 멈춰있는 상태에서 다시 생각하게 했을 때 ‘돌아갈 수 없는 선들이 있구나’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최근 운동에 동참하게 된 이유를 써놨지만. 10대 여성들 사이에서 꾸밈에 대한 압력이 저희가 학교를 다닐 때보다 훨씬 높아졌다 라는 이유를 통해서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인데, 막상 이 운동을 하고 나니까 제 삶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를 들면 제 몸 자체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거. 소위 한국에서 여성이 꾸미고 있는 그 기준에 따라서 제가 화장하거나 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살을 빼야 한다거나 어딘가가 좀 부끄럽다거나 몸을 의식하고 살았었는데, 우리가 처음 태어나면 우리 몸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 영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고. 이전까지 몰랐던, 잘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적 여성성 자체가 어떻게 여성의 몸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기제와 관련이 깊은가 하는 면도 세심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탈코르셋 운동은 선택도 자유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고른 이유는 탈코르셋을 이야기할 때 보통 ‘제일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선택의 자유인데 이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운동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오히려 선택하기 어려운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우리에게 강요되어 왔던 것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선택이 주어져있고 어떤 것이 우리는 자유롭게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또 고를 수 있게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대중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 많이 있잖아요. 그 대중 역시도 동참해야 하고 동참할 만한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거부감을 느끼실 대중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마음을 조금 거둬주시고 제가 발견한 새로운 상상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가 말로 이야기하는 상상을 어떻게 삶에 구현시켰는지, 한번 즐거운 마음으로, 편한 마음으로 한번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 운동이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를 처음에 거부감과 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오늘의 프란 코멘트, “탈코르셋 : 벗음으로써 얻은 살아있는 지식”
프란이 선택한 좋은 콘텐츠, 다음주에도 찾아오겠습니다.
한설이 PD ssolly@hankookilbo.com
전혜원 인턴PD
현유리 PD yulsslu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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