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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우 칼럼] 루저들의 전쟁

입력
2019.09.17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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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해도 정치는 퇴보

정책보다 사람 바꾸는 악순환

승자의 절제 등으로 벗어나야

조국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예방하면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이 대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예방하면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이 대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연합뉴스

정치는 스포츠와 많이 닮았다. 물론 민주정치를 스포츠경기처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경구도 있고, 스포츠가 정치에 오염됐다는 말도 나온다. 실은 정치와 스포츠가 너무 닮았고 관계가 깊기 때문에 생기는 걱정이다. 특히 권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대의민주주의 정치와 시즌마다 순위를 다투는 단체 스포츠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모두 승패가 분명하다. 정치나 스포츠나 크고 작은 국면에서 승부가 결정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승부는 규칙에 권위가 있어야 갈리고, 규칙은 플레이어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 패자는 결과를 깨끗하게 받아들인다. 패자 승복을 민주정치의 요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승자의 절제(restraint)다.

가령 야구에선 ‘오버 셀리브레이션(over-celebration)’이 금기다. 홈런을 쳤을 때 또는 삼진을 땄을 때 환희의 괴성을 지르고 뛰는 행위는 빈볼 보복을 당해도 될 만큼 나쁜 짓이다. 경기에서 이긴 건 실력이 상대적으로 앞서거나 운이 더 좋은 것이지, 나에게 약점이 없거나 상대에 장점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 한 방이 끝냈다고 해도, 거기까지 다른 선수들의 작고 큰 플레이가 있었다. 홈런 하나가 영광을 독점하면 다음부터 동료들은 노력을 덜 하고 상대는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려 한다. 종목이 망가지는 악순환이다.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언론은 정치문제를 보도할 때 스포츠식 비유를 쓴다. 경마식 보도도 그 사례다. 미국 언론은 ‘위너즈 앤드 루저스 (winners and losers)’란 스타일을 정치 기사에 많이 쓴다. 승자와 패자들을 여럿 찾아 순위를 매기는 글로, 쉽게 쓰고 쉽게 읽히면서 숨어 있는 면들을 다루는 게 묘미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 출범 후엔 ‘위너 없음’이란 기사들이 늘었다. 22개월의 수사 끝에 트럼프의 러시아게이트 보고서를 내놓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의회 증언이 대표적이다. 많은 언론이 패자 순위만 매겼다. ‘미스터 정의’라는 국민적 기대를 받으면서도 책임회피적 모습을 보인 뮬러 특검이 ‘루저 1위’다.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2위, 가능성이 멀어진 탄핵 소추가 3위, 추한 모습이 드러난 트럼프 대통령이 4위란 식이다.

루저들로 보면 조국 사태는 다른 정치사건과 비교되지 않는다. 조국 법무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이 추이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 있는 1, 2위다. 세대 전체가 기득권집단으로 몰린 586, 학문의 생명인 자율감시 체제(honor system)를 도리어 악용한 교수 사회, 수시ᆞ학종 입시제도가 그 뒤를 잇는 루저들이다. 지방대 차별발언 등 본질적 실수를 거듭한 여당, 계급과 불평등 문제에서 뒤로 빠진 이념 정당, 내부 성토를 당한 언론부터 위선의 상징이 돼버린 죽창가까지 모두 거명하기 어렵다. 몇 달 만에 이렇게 많은 상처를 낸 사건은 드물다. 그런데도 위너를 찾기 어렵다. 제1야당은 아무리 투쟁을 해도 비교우위 문제 때문에 지지가 늘지 않는다. 검찰이 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할지 의문이지만 그렇다 해도 민주주의의 위협이라는 인식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승패가 나지 않는 싸움이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승자의 절제는 자기 약점을 반성하고, 상대의 좋은 정책을 수용하는 한편 정치 보복을 피하는 것이다. 이런 절제와 패자의 승복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게 맞물려 승부를 결정하고 다음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한다. 경쟁이 국민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경로다. 지금은 정치가 자기 잘못은 고치지 않고 상대 잘못에 모든 것을 거는 게임이 됐다. 권력을 얻으면 정권들이 정책보다 사람을 바꾸고 그 명분을 찾는데 온 힘을 다했다. 전직 대통령은 무오류의 신화가 되고 정작 시대적 정책과제가 뒤로 밀렸다. 루저들의 전쟁이다. 지그재그라도 진보를 한다고 여겨졌던 한국 민주주의가 뒷걸음치고 있다. 돌아갈수록 뒤로 가는 마이너스의 나선형 궤적이다. 절제의 규칙을 지켜야 이 스파이럴을 멈출 수 있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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