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기 여주시의 평범한 농촌마을. 벽돌로 쌓은 외벽에 큰 창을 낸 양옥 주택들이 하나같이 전통 한옥 형태의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인근 이천시의 한 읍내에선 빌라나 상가, 아파트 옥상에까지 기와 모양 지붕이 즐비하다. 농촌이나 지방 중소도시에선 이미 익숙한 풍경이지만 건물 하나하나 뜯어보면 마치 양복 정장에 갓을 쓴 듯 어색하기 그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이 새로운 건축 양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붕 시공업체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1980년대 중반부터 농촌에서는 옥상이 곧 지붕인 ‘슬라브’ 주택이 인기를 끌었다. 작물 건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평평한 옥상은 슬라브 집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노후로 인한 균열과 누수, 결로 등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 장명자(78)씨는 “비가 한 번 새면 옥상 방수 공사에 벽지까지 바꿔야 하는데 200만~300만원이나 든다. 이런 시골에서는 감당하기도 어렵고 업체를 불러봐야 바로 오지도 않는다”고 푸념했다.
장씨의 경우처럼 긴 세월 이어 온 농가의 골칫거리를 단박에 해결한 것이 바로 옥상 위에 지붕을 덮는 아이디어였다. 옥상 바닥에 빗물이 닿지 않으니 누수가 발생하지 않고 단열이나 보온 등 부수 효과도 적지 않다. 특히 2010년경 등장한 ‘컬러강판’ 지붕은 저렴하고 시공도 간편해 농어촌은 물론, 지방 중소도시의 스카이라인까지 급속도로 바꿔놓았다.
다만, 비교적 저렴한 제품이 주로 기와 형태이다 보니 슬라브 집과 어울리지 않는 게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다. 충북 옥천에 사는 김모(52)씨는 “지붕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당장 비 새는 것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 4년 전 900만원 정도 들여 지붕을 올렸는데 비가 안 샐 뿐 아니라 여름엔 덜 덥고, 겨울엔 따뜻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옥상 위 지붕’이 건축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 이천시청 관계자는 “건축법에 따르면 새로 설치하는 지붕 높이가 일정 수치를 초과할 경우 증축에 해당돼 관할 관청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규모에 따라 설계 도면이나 구조안전진단 확인서도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이 같은 규정을 지켜가며 지붕을 설치한 경우는 거의 없고, 지자체 또한 주택 노후로 인한 주민 고충을 감안해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여주시청 관계자는 “지붕 공사와 관련해서 사전에 허가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면서 “건축법 준수 여부를 꼼꼼히 따지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농촌 지역은 고령자가 많고 방수 목적으로 올린 지붕에 과태료까지 물리는 것은 도의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단속이 느슨하다 보니 일부 상가 건물이나 농가에서 방수 목적 외 옥상 공간 활용을 위해 지붕을 높이 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민원이 발생하면 시정 조치가 불가피하다. 지붕 시공 업체 관계자는 “공사 후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가면 위반 내용에 따라 과태료를 물거나 철거까지 해야 하므로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붕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컬러강판 자체의 수명은 50년 정도지만 이를 건물에 고정하는 나사못은 길어야 10년에 불과하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옥상 위에 뚜껑 형태로 가설되는 형태이다 보니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다”며 “강력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 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또한 “이와 같은 건축 행위가 농촌 고유의 가치를 담은 경관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외관에 대한 고려를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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