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폭염 후 냉각, 공룡들 멸종의 길로
약 6,500만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지름 10㎞의 소행성이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지구를 점령해 온 공룡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통 학설이다. 공룡뿐이 아니었다. 공룡과 함께 지구 생물 70% 정도가 사라졌다. 대멸종을 야기한 소행성 충돌 첫 날, 지구는 어떤 일을 겪었을까?
미국 텍사스오스틴대와 펜실베니아주립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등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은 소행성이 부딪힌 유카탄 반도의 충돌구 ‘칙술루브 푸에르토’에서 소행성 충돌 첫 날을 확인해 줄 단서를 찾았다. 굴착을 통해 소행성 충돌 후 24시간 안에 충돌구를 채운 암석을 분석한 것이다. 칙술루브 푸에르토는 직경 185㎞에 달하는 거대한 충돌구로 해저와 해안에 걸쳐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소행성과 부딪힐 당시 충돌구는 엄청난 에너지 폭발로 순식간에 증발, 대기로 퍼졌다. 과학계에선 소행성 충돌의 폭발력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히로시마 원자폭탄 100억개와 맞먹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충돌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충돌구에는 녹아버린 암석 등이 40~50m 깊이로 쌓였다. 충돌 여파로 밀려났던 바닷물이 몇 시간 후 바위나 육지의 생물, 숯 등을 몰고 들어오면서 90m 높이의 퇴적물이 쌓였다. 연구진은 “하루 만에 130m 깊이의 퇴적층이 생긴 건 이전까지 보고된 지질학 기록 중 가장 빠른 속도”라고 설명했다.
9일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이 연구결과는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거대한 산불과 해일을 일으켰고, 대기 중에 방출된 검댕과 황 등이 햇빛을 차단시켜 대멸종을 불러왔다는 소행성 충돌설을 뒷받침한다. 바닷물이 몰고 와 충돌구에 쌓인 숯은 소행성 충돌 이후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지난 4월 PNAS에 게재된 다른 연구에 따르면 소행성 충돌로 순식간에 증발한 지반의 암석은 대기 중에서 여러 파편과 섞였다. 그런 뒤 굳으면서 뜨거운 유리구술 형태로 땅에 떨어졌다. 연구진은 소행성 충돌 45분~60분 뒤 뜨거운 유리구슬이 시속 160㎞~320㎞의 속도로 비처럼 내렸다고 설명했다. 멀리까지 퍼졌던 충돌 파편이 ‘유리구슬 비’로 쏟아지면서 지구 전역에 산불이 발생했다.
충돌구 암석을 분석한 이번 논문에서 제1저자로 참여한 션 굴릭 미국 텍사스오스틴대 교수는 “소행성 충돌 첫 날 많은 공룡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소행성이 충돌한 지역은 지옥(inferno)과 같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뜨거운 폭염이 지나간 뒤 오랜 기간 냉각기가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칙술루브 푸에르토 주변은 황을 다량으로 함유한 암석이 많은 반면, 소행성이 충돌한 지역에선 황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소행성 충돌 현장에 있던, 황을 함유한 암석들이 증발하면서 대기로 다량 방출됐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대기 속 황 입자는 햇빛을 반사시킨다. 연구진은 “소행성 충돌 이후 장기 냉각기가 찾아왔다는 소행성 충돌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소행성 충돌로 최소 3,250억톤의 황이 대기 중에 방출됐다고 추정했다. 이는 크리카타우 화산이 폭발하며 내뿜은 황보다 네 배 이상 많다.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당시 뜨거운 화산재가 쏟아져 수천 명이 즉사했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 3만5,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화산 폭발음은 히로시마 원폭보다 1만3,000배나 소리가 커 3,500㎞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폭발로 다음 해 지구 평균 기온은 약 1.2도 떨어졌다. 소행성 충돌에 따른 황 배출량은 이보다 네 배 이상 많았다.
연구진은 소행성 충돌은 지역적인 수준에서 대량 파괴를 일으켰지만 보다 큰 후폭풍은 충돌이 몰고 온 기후변화였다고 강조했다. 굴릭 교수는 “공룡을 사라지게 한 진짜 살인자는 대기였다”며 “대기 효과는 지구상에서 대량멸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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